개구리
24 절기, 봄 절기 중 세 번째 절기 경칩
- 따뜻해진 날씨에 숨어 있던 벌레가 놀라서 튀어나오는 시기
- 동면을 마치고 겨울잠에서 깬 개구리가 짝짓기를 위해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시점
근로기준법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이전... 옛날 옛날에..
자영업을 하시던 부모님에게 쉬는 날이라고는 존재하지 않았었다.
새벽길 가야 하는 누군가의 급한 사정이 쿵쾅쿵쾅 셔터를 두드리면..
알람 소리를 들은 듯 벌떡 일어나 드르륵 가게 문을 열어 주시던 부모님이셨다.
부모님의 쉬는 날은 셔터가 열리지 않는 날이었다.
변변한 상가 덧문이 없던 시절 셔터라고 불리는 가로로 끼워 넣는 은색 함석판이 잠시 기억을 스친다.
나중에는 하늘색 세로로 된 그럴듯한 덧문을 장착했지만 말이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으로 기억이 된다.
볼일을 보시러 어쩔 수 없이 출타하셔야 하는 부모님을 따라가지 못해 집에 남겨질 때면...
신신 당부 하셨다.
누가 문을 두드려도 없는 척해야 한다! 인기척 내지 말고 문 꼭 닫고 있어야 한다.
그 셔터 속에서 보호를 받으며 지냈는지, 그 셔터 속에 갇혀 있었는지의 경계는 애매 하지만...
그 시절 "전설의 고향" 주인공이 위험을 피해 집으로 돌아와
초가삼간 단칸방 안에서 문고리 하나 잡고 새벽닭이 울 때까지의 긴장감 도는 미션을 수행 을 하듯
이름을 불러도 절대로 대답하면 안 되는 것을 각인하며...
커다란 창을 덮은 셔터를 문고리 삼아 인기척 내지 않는 미션 수행은 항상 완벽하게 이루어졌다.
그렇게 직업정신 투철한 부모님께서 칼바람 부는 겨울이면 주섬주섬 가게를 정리하시며
장화, 고무장갑, 목장갑, 반도, 데꼬라고 불리던 지렛대를 꼼꼼히 챙기고 나서...
셔터를 내리신다.
온 식구를 소환해 연식 있는 은색 승합차를 타고 덜덜 거리며 구불구불 고개를 넘어간다.
반드시 경칩 이전이어야 한다! 입이 떨어지면 안 된다! 비장함이 감돈다!!
그렇게 부모님의 겨울 취미 생활 "슬기로운 어로(漁撈) 생활"이 시작된다.
마치 소풍날 보물찾기 하듯
겨울 가뭄에 꽁꽁 얼어붙은 개울 물에 장화 신고 들어가 얼음을 깨내고
여기저기 돌을 들추며 그것을 찾기 시작한다.
낮은 수온에 동면하던 그것은... 얼떨떨한 모습으로 대책 없이 우리 손에 붙잡혀 주전자 안으로 들어간다.
자다가 날벼락이라는 말은 그것들이 우리에게 할 말일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겨울시즌 한정판 개구리 가족이 된다.
아빠 엄마도 미안하셨는지 잡아놓은 개구리에 튀김옷이라도 입히는 예의를 택하신 어느 날
차마 먹을 용기가 없어 관전하던 우리 형제들은 엄마 요리솜씨의 실체를 보고 만다.
튀김옷 곱게 입은 개구리가.... 덜 달구어진 기름 속에서 평형하며 헤엄 치던 것을.....
나의 경칩은... 그렇게 각인되었다.
경칩과 함께 그리움을 만난다.
어느덧 아빠 돌아 가신지 20년이 되어 가기에..
오늘(경칩)이 지나기 전에.. 다시 함께 개구리 잡는 꿈을 꿀 수 있다면 한 주전자 가득 채워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