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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혹시 비혼주의세요? 라는 질문을 들을 때면

by 스파티필름


이혼녀라는 타이틀이 창피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자랑스럽지도 않았다.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그게 동성이든 이성이든) 언제 이혼 사실을 얘기해야 하나 고민했다. 누가 묻지 않아도 말해야 할 것 같다가도 괜히 먼저 치부를 드러내고 싶지도 않았다.

“혹시 비혼주의세요?”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어색하게 웃으면서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러고는 그 뒤에 말을 잇지 못할 때, 아직 이혼이 내 안의 나를 붙잡고 있다는 걸 느끼곤 했다.


요즘 세상에 이혼이 흠은 아니라지만 그렇다고 신나게 떠들 자랑거리도 아니었다.


그래서 누군가 좋은 사람을 소개해 준다고 할 때면 그것만큼 곤욕스러운 일이 없을 수가 없다. 내 이혼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면 미안해하며 거절하거나 아니면 이혼했다고 얘기를 꺼내면, 꽤나 난처해하는 얼굴을 마주쳐야 했다.

상대방의 당황해하며 미안해하는 표정은 참 익숙해지지 않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나의 모든 힘든 시간을 옆에서 본 회사 친구의 소개팅 제안은 조금 더 편안하게 다가왔다.

숨길 게 없는 사이였기에 상대방의 의중을 물어봐 줬고 상대 역시 이혼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게 성사된 소개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남자 친구의 지인으로 아주 가까운 사이는 아니니 마음 편히 만나보라고 했다.

운동 동호회에서 알게 된 친구인데, 성격은 시원시원하고 운동을 좋아하며 나이는 나랑 동갑.

여기까지가 그에 대해 전해 들은 내용이었다. 연락처를 넘겨줬다는 이야기를 들은 지 하루 정도 지난 오후, 그에게 첫 연락이 왔다.

‘안녕하세요. 소개받은 L이라고 합니다.‘

담백한 인사였다. 오랜만에 하는 소개팅이어서 그런지 괜시리 설렜다. 간단한 안부 인사를 어색하게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그의 카톡 프로필을 눌러봤다.

무쌍의 남자다운 느낌의 얼굴. 운동을 좋아한다고 하더니 사진에는 운동하는 모습이 꽤 많이 보였다.

훤칠한 키도 듬직한 모습도 마음에 들어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만나기 전부터 설레는 건 금물.

그와 담담하게 카톡을 몇 개 주고받고 우리는 주말에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그 사람도 나도 알고 있었다. 연락만 주고받으며 의미 없는 시간을 길게 쌓아가는 것보다 만나서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게 서로의 시간을 아낄 수 있다는 것을.

그걸 서로 알 만큼 우리는 이미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약속을 잡고 주말까지는 저녁에 간단하게 안부 인사 정도만 주고받았다.


너무 마음을 키우지 말기.

섣불리 오해하지 말기.

너무 성큼 다가가지 말기.

나는 그렇게 내 마음을 컨트롤 하기 위해 노력했다. 설렘이라는 감정은 늘 크게 부풀었다가

때로는 너무 쉽게 꺼지기도 하기에. 혼자 앞서나가지 않도록 천천히 나아가는 노력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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