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이라는 큰 산을 넘고 이제는 어느 정도 사람 보는 눈이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나의 큰 착각이었다.
내게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정도는 가려낼 수 있다던 나의 오만함의 결과로 나는 늘 시행착오를 겪었고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여전히 그 숙제를 풀지 못했다.
‘인간은 늘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라는 말이 맞는 걸까. 최선을 다해 정답지를 골라 보지만 언제나 아쉬운 점수가 적힌 성적표를 받아 든 기분이다.
그가 보낸 주소로 찾아간 곳은 번화가 뒤편 골목길에 자리 잡은 조용한 카페였다. 소개팅하러 카페 문을 여는 순간만큼 떨리는 순간이 또 있을까.
오후의 햇살이 가득한 카페에서 나는 얼굴도 모르는 그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고 생각보다 그를 찾기는 쉬웠다.
그 카페에 홀로 앉아 있는 남자는 L, 그 사람뿐이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L씨 맞으신가요?”
사진보다는 조금 더 까무잡잡한 얼굴의 그가 앉아 있었다.
“아, 네. 반갑습니다.”
“시간 맞춰 온다고 했는데, 많이 기다리셨어요?”
“아뇨. 저도 조금 전에 왔어요. 위치를 잘 몰라서 조금 일찍 출발했어요. 아, 음료 뭐 드실래요?“
뚝딱뚝딱. 어색한 인사말을 주고받으며 우리의 소개팅은 시작됐다.
남자다우면서도 서글서글한 그를 보며 인기가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커피를 마시며 자신의 얘기를 꺼내고 상대방의 얘기를 들어주었다. 그는 자기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카페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자리를 잡느라 바빴다는 그는 마지막 연애가 끝난 지 일년 정도 되었다고 했다.
”사실 제가 사진 보고 소개해달라고 졸랐어요.”
그의 말에 순간 당황해서 눈을 크게 떴다.
“네? 아, 그 말은 처음 들었어요. 제 사진을 어떻게...?”
“나희랑도 인스타 친구거든요. 나희 인스타에 같이 찍은 사진이 있더라고요.”
그는 능청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아...그러셨구나.” 오히려 민망해한 건 나였다.
“네, 사진 보고 마음에 들어서 물어봤어요. 다행히 남자친구가 없으시다고 해서..
제가 몇 번이나 졸랐어요.”
생각보다 훨씬 적극적인 그의 모습에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나를 소개해 달란 말에 친구는 몇 번을 거절했고 마지못해 내게 소개팅 의사를 물어봤던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허락(?)을 하자 조심스럽게 그에게 나의 과거를 얘기했다.
“상관없었어요.”
그는 예상 못 했던 사실에 당황했지만 상관없었다고 했다.
말 한마디, 웃는 모습, 적극적인 태도. 꽤 괜찮은 그의 모습이 기분 좋으면서도 어쩐지 뭔가 마냥 좋지만도 않았다.
‘이 사람, 너무 잘하네.’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것이 미래의 내가 보내고 있던 시그널이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