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온통 그의 단점만 가득한. 그러니깐 나의 이혼을 정당화하는 이유들만 가득 쓰고 있는데
사실 나는 이혼은 결국 양쪽 모두의 잘못이 섞여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어느 정도의 퍼센티지는 다를 수 있겠지만 이 모든 이야기는 순전히 내가 말하는 이혼의 이유일테니 말이다.
내 입장에서 그는 바람을 핀 능력 없는 남편이었고 그의 입장에서 나는 하루아침에 매몰차게 변해버린 아내였을 테니 말이다.
몸도 마음도 자꾸 아파오는 가운데 크고 작은 싸움이 매일 같이 이어졌던 걸로 기억한다.
회사 일 때문에 늦게 끝나는 날이면 회사에서 가까운 친정에서 자는 날이 많아졌고 그런 날은 오히려 마음이 편안했다.
그리고 내가 친정에서 자는 날이면 20대 후반의 그는 어김없이 밤늦게 까지 친구들을 만나기 바빴다.
조금은 빠른 결혼으로 그는 유부남이었지만 그의 친구들은 놀기 좋아하는 청년들이었을텐니 말이다.
어느 저녁, 그날은 싸움도 없었고 그저 같이 저녁을 먹고 밤이 되어 킹 사이즈 침대의 끝과 끝에 누워 아무 말 없이 잠을 청하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이미 농담이나 일상의 얘기도 없어진 지 오래였다.
“우리 이 집을 빼고 평일에는 각자 집에서 지내다가 주말에만 네가 우리 집으로 올래?”
불이 꺼진 방 안에 그의 나지막한 말이 울렸다.
“별거 하자는 소리야?” 나는 그의 입에서 떨어져 지내자는 말이 나온 게 기가 막혔다.
그 말을 해도 내가 해야 되는 거라 생각했다.
“별거는 아니지, 그냥 네 회사도 너네 집에서 더 가까우니 편히 다니라 이거잖아.”
그의 같잖은 배려가 우스웠다. 그래봤자 신혼집과 회사는 지하철로 40분 거리였다.
그냥, 밤마다 놀고 싶은 거잖아. 나 없이 편하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내 인생에 별거는 없어. 그럴 바엔 이혼하자, 우리.”
그의 편한 대로 해주고 싶지 않았다.
남편의 월급 없이 혼자 벌어서 생활한 지 벌써 1년째.
적금은 고사하고 마이너스 통장의 금액은 늘어만 갔고 나는 지독히도 가난한 이 결혼생활이 싫었다.
갑자기 생긴 족저근막염으로 병원에 가니, 집이 언덕에 있냐고 물어보는 의사 선생님의 질문에 빨개진 내 얼굴이 싫었고
매일 언덕을 올라가야 집에 도착하는 이 동네가 싫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내 학창 시절과 눈부셨던 20대 시절, 가족과 함께 있어 따스했던 그 동네로 돌아가고 싶었다.
무슨 이혼이냐고 펄쩍 뛰는 그와 밤 12시 넘어까지 큰 소리로 다툰 후에
나는 그날 새벽 며칠 입을 옷가지들만 챙겨서 도망치듯 집을 나왔다.
그렇게 나는 하루아침에 이혼을 요구하는 나쁜 여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