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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그래, 그럼 이혼해 줄 테니 재산은 요구하지 마

by 스파티필름


지금도 기억이 나는 건 그 때가 2월 설 날이었다는 것과 귀농한 부모님이 서울에 올라와 계셨다는 것이다.

언니네는 시댁으로 떠났고 집에는 나와 부모님이 있었다.

나는 방에서 그의 전화를 받고 울며 사정을 하고 있었다. 제발 부탁이니 이혼 해달라고.

더 이상은 함께 살고 싶지 않다고. 제발 나를 놓아달라고 울며 애원했다. 그만큼 나는 절실했고 절박했었다.

그런 나의 울분이 거실에 계신 부모님께도 들렸으리란건 당연했다.

추후 어머니는 말했다. 거실 밖 아버지가 울고 계셨다고... 막내 딸의 외침이 마음이 아파 같이 울고 계셨다고.

결혼을 허락한 자신의 잘 못 같아서 따듯하고 다정한 나의 아버지는 그렇게 같이 아파하셨다.

지금도 나는 그 날 울고 나온 내게 괜찮냐며 물어보던 아빠의 얼굴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두 달 동안 그는 내게 빌기도 하고 사과도 하고 협박도 하며 울부짖기도 했다.

어찌보면 그의 입장에선 당연한 것이리라. 하루 아침에 갑자기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를 어떻게 이해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내인생에서 이렇게도 고집스러운 적이 있나 싶을정도로 이혼을 원했다. 제발 그가 이혼에 합의해주길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인데 어쩌면 이토록 멀어지고 싶을 수 있을까.


두 달의 협박과 회유가 이어졌고 길고 긴 싸움끝에 그는 내게 말했다.


“그래. 그럼 이혼해 줄 테니 재산은 요구하지마.“


나는 그의 말에 실소가 터졌다. 우리가 나눌 재산이란게 있었던가?

기껏해야 아주 적은 월세 보증금과 중고로 구매한 차가 다인데..


나는 그에게 아무것도 갖고싶지 않다고 했다. 이혼서류에 싸인만 해준다면 모두 다 주겠다고 말했다.

결혼 이후로 생긴 마이너스 통장도 모두 내가 가지고 가겠다고 그러니 제발 이혼서류에 싸인만 해달라고 말했다.


그 집에 있는 것 중에 어느 것도 가지고 싶은 건 없었고 내게 의미도 없었다.

다만 지금도 가장 후회하는 건 단 하나.

베이킹을 좋아하는 딸에게 하고싶은 것 마음껏 하라며 아빠가 결혼 선물로 사준 나의 첫 오븐.

나에겐 그것만이 그 집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 오븐이 나의 2년의 결혼 생활 중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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