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원한다고 말해
잎들을 스쳐가는 바람소리만 들리는 작은 온실, 소리를 내지는 않지만 식물등 열기에 달아오른 그녀가 있었다.
화분 속 깊숙한 곳까지 뻗은 뿌리를 베베 꼬며 참고 있는 모습이, 어쩌면 자신을 탐할 누군가를 기다리는 게 한계에 다다른 것일지 모르겠다.
"날 원한다고 말해 줘."
귓가를 간지럽히는 바람이 살랑 거리며 스쳐 지나갔다.
초록색 잎 위로 흩뿌려진 하얀 무늬는 아찔한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더 많은 부분을 하얀 무늬로 가득 채운다면... 하아...'
작은 온실의 투명한 문이, 내뱉어지는 숨결에 점점 뿌옇게 변했다.
"아직은 아니야"
또 한 번 귓가에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약간은 눈에 힘이 풀려 좁아졌던 시야가 다시 선명해졌다.
그녀는 왜 아직 아니라고 했을까.
무엇을 더 기다리며 참고 있는 걸까.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그녀가 원하는 순간은, 모든 걸 집어삼킬 것만 같은 검붉은 꽃이 피어나는 때가 아닐까.
붉게 개량된 불포엽은 누구든 시선을 빼앗길 것이고, 촉촉하게 흐르는 액체는 주변의 모든 수꽃들이 탐욕에 물든 욕구로 몸을 지배하게 만들 것이다.
"내가 피어나면, 넌 나를 잊지 못할 거야."
그녀는 내가 생각한 것이 맞다는 듯 바람에 몸을 맡기며 자신만만하게 잎을 흔들었다.
수꽃들의 경쟁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수꽃들은 알고 있었다.
몸속 어딘가에서 천천히 무언가가 익어가고 있다는 것을.
하루하루가 지날 수 록 그녀의 잎맥을 타고 흐르는 매력은 점점 더 짙어지고 있다. 식물등의 빛은 따뜻하게 내려앉고, 뿌리는 더 깊이 흙 속으로 뻗고 있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조금씩 달아오르는 이 느낌. 마치 기다림마저도 유혹의 일부인 것처럼 잎의 색감은 점점 더 농익고 있다.
"조금만 더..."
그녀는 서두르지 않았다. 완벽한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마침내, 때가 오면 그녀는 붉게 타오를 것이다. 강렬하고 눈부시게, 누구도 외면할 수 없게. 그녀를 본 모든 수꽃들은 숨을 삼키고, 시선을 빼앗기며 빠져들게 될 것이다.
그 순간이 오면, 그녀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그녀를 바라보는 수꽃들이여. 꽃가루를 만들고 탐해라.
- 벌써부터 붓을 구매하려고 인터넷 검색을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