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과 멋 | 감자 먹는 사람들의 동네, 강릉

감자 먹는 내 고향.

by Ggockdo

고흐의『감자 먹는 사람들』그림을 처음 봤을 때, 피로에 찌든 사람들의 눈물겨운 한 끼, 라는 해설을 읽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감자에 대해서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 고향인 강릉, 강원도는 감자에 특화된 지질을 가졌다. 이상하게도 전분이 찰지고 감자 씨알도 굵어서 역전에 반평짜리 노천 수십 개가 다닥다닥 붙어 감자전과 감자떡을 팔아도 다들 먹고살 수 있을 정도다. 지금은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멀끔한 점포로 탈바꿈했지만 십 년 전만 해도 허름하고 낮은 노포들이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었다.


점포는 액자 속 그림 같았다. 허리 한번 펴지 못하는 할머니들이 주인공인 좁은 내부는 나름 알찬 세간을 갖추고 있었다. 모터 소리가 큰 냉장고나 아이스박스의 각진 구성과 기름 찌든 장판과 단 하나도 수평이 맞지 않은 선반이 기본이었다. 고무 다라이나 오래된 김장 바께스를 헌 무명천으로 덮어 놓은 아래에 씨알 굵은 감자가 있었다. 할머니들은 반 평도 안 되는 작은 점포에서 늘 손님 쪽으로 목욕탕 의자에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요리했다.

솥뚜껑을 뒤집어 놓은 팬이 두 개인 곳은 전이 주력인 점포였다. 배추를 길게 찢거나 그대로 쪽파와 얹어 낸 메밀전이나 김치와 두부 볶은 것을 속으로 채운 메밀부꾸미 용 솥뚜껑 팬, 그리고 주문이 들어오면 바로 그 자리에서 감자 두 알을 꺼내 슥슥 강판에 갈아 두툼하게 부쳐주는 감자전용 솥뚜껑 팬이 나란히 있었다.

옆에는 늘 무 꼭지가 있었다. 할머니들은 기름을 두를 때 꼭 무 꼭지에 기름을 묻혀 팬에 발랐다. 기름에 절은 무 꼭지는 늘 종지에 다소곳하게 앉아서 팬 옆에서 놀았다. 어떤 집들은 올챙이 국수나 묵밥을 내어놓았고 가끔은 집에서 담근 밀주를 팔기도 했다. 나는 여러 번 농사일 마친 할아버지들이 감자전 하나와 밀주에 고주망태가 되어 바닥에서 잠드는 모습을 봤다.


손님은 할머니의 액자 같은 점포 바닥에 잇대어 놓은 일자형 테이블 앞에 앉았다. 그림을 보는 방향이었다. 다섯 명도 빠듯한 작은 식탁에 쉽게 물 한 컵도 올려놓을 여유가 없어도 모두 군말 않고 옹기종기 모였다. 낡은 점포 군집 지역은 관광객이 적고 오히려 퇴근하는 주민이나 시장에 들른 동네 사람들이 간단하게 하나씩 사 먹고 가는 곳이었다. 서울에서 만오천 원 받는 감자전보다 더 크고 포실한 감자전이 삼천 원을 넘은 적이 없었다. 고작 두 알의 감자에서 나온 한 끼는 등까지 따뜻하고 고소했다.

할머니들은 퉁퉁 불은 손으로 다리사이에 낀 대야에 강판을 얹고 주먹보다 큰 감자를 순식간에 갈아냈다. 무 꼭지로 기름 바른 까만 솥뚜껑에 감자 간 것을 부으면 전분 때문에 신기한 질감을 가지고 팬에 들러붙어 바싹 익혀진다. 소금 간 조금 한 희여 멀건 한 판으로 구워 나오는 감자전에 간장양념장 하나면 노곤함까지 밀려 들어오곤 했다.


시장 깊은 쪽으로 가면 계란집 옆에 간판 없는 오래된 식당이 있었다. 장칼국수와 옹심이만 파는 국숫집은 가장 안쪽, 작은 창고방에 감자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한쪽 감자무더기는 삭아가면서 맛있는 전분가루를 냈고 할머니는 삭은 감자에서 나온 전분가루와 금방 갈아낸 감자 전분을 섞어 옹심이를 만들었다. 갈고 남은 감자 끄트머리도 숭덩하게 들어간 옹심이는 심심하고 걸쭉하게 허기를 채웠다. 멸치 육수는 아침부터 큰 솥에 끓고 있어서 저녁이 될수록 짙은 색을 냈다. 그날 그날 장에서 얻은 투박한 호박이나 당근 조각, 김가루가 적당히 들어간 국물은 중화의 울면 같은 질감을 가지고 건더기를 쫀득하게 끌고 다닌다.


밥을 할 때에도 꼭 감자를 넣어주는 버릇이 있는 내 고향의 감자 먹는 사람들은 고흐의 그림과 달랐다. 늘 손이 퉁퉁 불어 있는 초원집 할머니도 수다스럽지 않아도 늘 웃는 얼굴이었다. 감자와 두부를 자주 만지는 할머니들은 피부 결이 고왔다. 불어 있을 지언정 하얗고 반질 반질했다. 감자를 먹는 사람들은 그 순하고 투박하게 배부른 한 끼를 먹으며 울적해하지 않았다. 좁은 동네 사정에 외상을 달아도 감자 한 알 더 갈아 넣어주는 인심이 감자 한 개 값보다 비쌌다.


독일에 도착하자마자, 시장에서 품종별로 크기별로 진열된 감자만 파는 상점을 찾았다. 나는 그저 주먹만 한 감자만 알고 있는 강릉 사람이라서 세계에 그렇게 다양한 감자가 있는지 몰랐다. 한인 교회 권사님은 나에게 전분이 많은 감자와 적은 감자를 구별하는 법과 맛있는 감자가 무엇인지 알려주었고 크리스마스에 먹는 감자전과 비슷한 전통요리가 있었지만 나는 내 고향의 감자를 잊을 수가 없었다. 아무렇게나 갈아내도, 대충 삶아도 속 뜨끈하게 먹던 감자들이 향수 그 자체였다. 감자는 뽀얗고 포실하고 쫀득한 맛으로 감자튀김Pommes가게 주인에게 절대 꿀리지 않는 자신감으로 내 속에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고흐의 그림 속, 어두운 불빛 아래 삼삼오오 모여 비통에 찬 표정으로 식은(아마 식은 감자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감자를 먹는 사람들을 볼 때, 가끔 나는 상대적 우월감에 젖는다. 감자튀김, 감자 으깬 매쉬를 먹는 네덜란드 사람보다 강릉사람이 진짜 『감자 먹는 사람들』이다. 이쯤 되면 누구라도 강릉 버전을 그려주어야 할 것이다.


기름 바른 무 꼭지와 메밀전, 감자전 그리고 감자 두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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