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가 절실했던 한 때
가끔 육신이 알아서 특정 식품군을 끌어당기는 때가 있다. 어느 가을에 무화과가 그랬다. 혼자 독일에서 보내는 해의 첫가을이었다. 백야 때문에 오후 11시가 넘어서야 해가 졌다. 다행히 흔히 유학생들이 겪는 물갈이는 하지 않았지만 나는 퍽 삭막한 생활을 하는 중이었다. 아직 머물 집도 정해지지 않은 채로 잠깐 여행 간 유학생의 집에서 임시로 지냈다. 살림살이가 빼곡한 원룸에 내 짐은 가방 두 개뿐이었다. 빌린 이불과 빌린 베개를 베고 빌린 접시에 빌린 커트러리로 밥을 먹었다. 소유를 주장할 수 있는 게 너무 적어서 내 삶이 내 것 같지 않았다. 스트레스와 불안이 백야의 하늘만큼 길고 밝았다. 그리고 불안은 허기를 부추겼다.
때마침 무화과 수확 철이었다. 터키산 무화과는 알이 작고 지나치게 달고 가격이 쌌다. 3주 빌린 집에서 슈트라쎈반Strassenbahn 정류장으로 나가는 길목에 위치한 네토NETTO슈퍼마켓 야외 매대는 작고 싼 터키산 무화과를 진열해 놓고 벌이 꼬이게 했다. 벌이 꼬이는 작은 무화과는 하나에 15센트로 저렴해서 학교 앞 불량식품을 사 먹는 기분이 들었다. 가장 싼 무화과는 껍질이 얇고 완전히 농익어서 매일 새벽 슈퍼마켓에 진열된 뒤 점점 뭉그러져서 오후 3시만 되어도 찐득하게 녹아내렸다.
나는 아침에 외출하면서 매일 15센트짜리 무화과를 세 알씩 샀다. 봉투에 넣지도 않았다. 초란만 한 크기의 무화과를 손에 들고 계산을 마치자마자 길에서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그리고 슈트라쎈반 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열린 Kaiser 마켓(NETTO보다 조금 가격대가 높은 수퍼마켓)에서 조금 더 알이 굵고 탄탄한 무화과를 두 알 샀다. 껍질이 조금 더 단단한 카이저의 무화과는 한 알에 25센트였다.
정류장에서 405번 슈트라쎈반을 기다리면서 오늘은 천천히 먹어야지, 하고 다짐해도 결국 기다리는 동안 다 먹어치웠다. 반Bahn에 타기도 전에 아침나절에 다섯 개나 먹어치운 것이다. 씻지도 않은 채로 먹어 치운 뒷 맛은 늘 약간 텁텁했다. 아마 껍질의 맛일 것이다. 그리고 까끌한 맛을 가리기 위해 무화과 대신 커피를 한 잔 사 먹었다. 커피는 1유로, 무화과 다섯 알의 값이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나는 또 무화과를 떠올렸다.
일을 마치자마자 바로 앞에 큰 상가에 입점한 알디ALDI(대표적인 독일 슈퍼마켓)로 달려가 또 무화과를 샀다. 상가 안에 입점된 마켓은 야외 매대에 진열한 무화과보다 조금 더 오래 싱싱함을 유지했다. 저녁의 무화과는 반드시 실내 진열대에서 고르는 나름의 이유였다. 아침에 다섯 개나 먹었으나 저녁에는 세 개만 살까, 한참 고민하면서 세일 코너를 한 바퀴 돈 다음, 영락없이 다시 무화과 진열대로 갔다. 한 알에 20센트이니 계산하기 쉽게 다섯 개를 사기로 한다.
이번엔 꼭 봉투에 담으면서 길거리에서 먹어치우지 않기로 다짐한다. 뿌리째 파는 샐러리(무같은 구근이 달려 있다.), 세일하는 버팔로 모짜렐라 치즈, 한 봉투에 90센트인 가장 저렴한 스파게티니면 사이에 굴러다니는 무화과 다섯 알이 더 이상 뭉그러지지 않도록 신경 쓰면서 걸었다. 그러나 무화과의 얇은 껍질이 까져 흰 과육이 드문 드문 드러나고 빨간 속내가 벌어져 끈적한 진액이 흘러나오며 단 내가 폴폴 나면 마음이 급해졌다. 저녁을 먹고 후식으로 먹을 계획이었던 다섯 알의 무화과는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내 집에 무화과가 들어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늘 거리에서 참지 못하고 먹어치웠다. 집 앞에 도착하기 전에 쓰레기 하나 남기지 않고 다 먹어치웠다. 두 주간 내내 그랬다. 하루에 평균 열 알의 무화과를 우울증 약을 먹듯 먹어치우면서 백야를 견뎠고 슬슬 노을이 빨라지기 시작하는 즈음에 집을 구했다. 그리고 무화과 철은 끝이 났다.
다음 무화과 철에는 무화과를 그리 많이 먹지 못했다. 아침저녁으로 붙어 다니던 친구가 무화과 알레르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딱히 아쉽지는 않았다. 매대가 보이면 두세 알을 사서 제자리에서 먹어치우는 게 무화과를 먹는 방법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하루에 다섯 알 이상 먹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온 뒤, 늦은 포도철 끄트머리에 무화과 파는 것을 보았다. 한 박스에 이만 원이 넘었다. 그래도 두 박스를 샀다. 한국의 무화과는 알이 훨씬 더 굵고 껍질이 뻣뻣했고, 시큼했다. 껍질이 두꺼워서 끄트머리도 조금씩 남겼다. 알이 굵고 실한 국산 무화과는 냉장고 안에서 굴러다니다 썩어 문드러져버렸다.
무화과 철이 되면 지금은 카페마다 무화과 메뉴를 내놓는다. 디저트 위에 올라간 작은 무화과 조각을 씹으면서 이따금씩 그때의 너무 익어 뭉그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던 무화과를 떠올린다. 훨씬 작고 금방 녹아버리는, 연약하기 짝이 없는 야들야들한 무화과의 진한 단 맛, 입에 넣으면 마시멜로보다 더 빨리 뭉그러져 내리던 육질, 허겁지겁 거리에서 먹어치우던 내 모습은 어땠을까? 혹시 너무 게걸스럽지는 않았을까?
이미 지난 일이니 아무래도 상관은 없지만, 그때 무화과를 먹어 치웠던 야만적인 계절은 어찌 된 일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