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과 멋 |진짜 굴라쉬 수프는 무슨 맛일까?

레마르크의 소설『그늘진 낙원 』속 굴라쉬Gulasch 수프를 찾아서

by Ggock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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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굴라쉬 수프는 무슨 맛일까? 굴라쉬 수프는 늘 나에게 환상 속의 음식이다. 여기저기서 먹어보고 충분히 맛있게 먹었으면서도 여전히 알 수 없는 맛있는 음식.

나는 소설로 맛을 배웠다. 흙만 살살 털어 먹어야 한다는 송이버섯의 맛이나 간수 뺀 물로 만드는 하얀 두부의 맛, 봄감자의 포슬한 맛은 읽어내는 순간 바로 혀 끝에 침이 돌았다. 잘 알 수 있는 맛이라 글자를 씹어 먹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외국 소설에 등장하는 맛은, 아무리 먹어도 이게 정말 이 맛이 맞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러면 그 맛들은, 음식들은 아무리 찾아 먹어도, 여러 번 먹어도 늘 봉황 고기 같은 환상 속의 음식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나를 독일로 이끈 작가, 에리히 레마르크의 소설『그늘진 낙원 Schatten im Paradise』(국내에서는 먼저

『약속의 땅』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은 나의 맛과 멋의 참고서였다. 세계 2차 대전 시기, 나치에 반대해 도미渡美한 독일인의 이야기 속에는 온갖 근대 미술과 유물들, 유럽의 노스탤지어를 상징하는 음식과 와인의 정보가 가득했다. 나는 소설 속 주인공이 마침내 거주 비자를 받은 동향인의 집에 초대되어 얻어 온 굴라쉬 수프의 맛이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임시 비자로 낡은 호텔에서 사는 독일인과 영화배우인 러시아 미녀 사이에서 굴라쉬 수프는 사랑을 가능하게 하는 소울 푸드로 읽혔다.


요리사 마리가 굴라시를 에나멜 단지에 넣어 내게 주었다. 그것을 데울 수도 있었다. 전기풍로와 접시 몇 개와 수저 따위를 갖고 있었다. 단지에서 오이도 꺼내 놓고 장에서 빵도 갖고 왔다. "다 준비되어 있소," 나는 말하며 식탁 위에 손수건을 폈다. "굴라시가 데워질 때까지 기다려야겠군." (『그늘진 낙원 Schatten im Paradise』, 레마크르, 범우사, 99년도 2 쇄판)


전기풍로 위에서 서서히 데워지고 있는 법랑 항아리(에나멜 단지). 러시아에서 도망 온 미녀배우와 독일에서 도망 온 미술 도매상의 가장 소박한 음식인 굴라쉬에 대한 상상이 멈추지 않았다. 아마도 손잡이가 양쪽에 달린 하얀 법랑 단지는 흔히 독일에서 보는 꽃문양이 그려져 있을 것 같았다. 잠깐 딴생각을 하다가 굴라쉬를 조금 태워먹었으니 바닥에 눌은 건더기가 있을 것이다. 작은 단지에서 꺼낸 절인 오이와 곡물빵과 함께 먹는 뜨거운 굴라쉬는, 대체 무슨 맛일까?


헝가리 음식임에도 독일인과 러시아인 모두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수프는 심지어 독일어 초급 교재에도 등장했다. "우리 뭐 먹으러 갈까?" "그럼 나는 굴라쉬 수프를 먹겠어." 한국의 독일어 수업 시간, 모두 굴라쉬 수프가 무엇인지도 모를 때, 나는 혼자서 '그' 굴라쉬 수프가 언급되었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벅찼다. 굴라쉬는 중성 명사, Das Gulasch였다.


그즈음, 처음 굴라쉬 수프를 먹었다. 부모님의 결혼기념일 식사였다. 굴라쉬를 먹고 싶어 하는 나를 위해 부모님은 태풍을 뚫고 대학로의 독일식 맥주집을 찾아가 주셨다. 우리 중 아무도 맥주를 마시지 않지만 수소문해 찾아간 만큼 부어스트Wurst와 굴라쉬수프를 비싼 값을 내고 먹었다. 처음 먹은 굴라쉬 수프는 짜고, 달고, 맛이 없었다. 풍로에 데워 쪽방에서 나눠 먹던 소설 속의 그 굴라쉬 수프는 이 맛이 아닐 것이다.

독일로 가자마자 나는 굴라쉬 수프를 어디에서 파느냐고 물었다. 굴라쉬는 흔하게 찾아볼 수 있었지만 어쩐지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아직 친구를 사귀지 못했고 혼자 굴라쉬를 먹으러 가기엔 아직 독일이 낯설었다. 그렇게 점점 굴라쉬의 기회를 미뤄놓고 있었다.


그날은 첫 굴라쉬의 날처럼 비가 내리는 쌀쌀한 날이었다. 아직 오후 다섯 시도 안되었는데 사방이 깜깜했다. 어둑한 비가 부슬거려 우산을 써도 안경에 잔뜩 물방울이 맺혔다. 서점으로 가는 내내 배가 고팠고 조금 우울했다. 슈테언Stern(별) 서점은 유서 깊은 오래된 호텔 1층에 있었다. 마침 레마르크의 소설 같은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축축한 몸을 잔뜩 움츠려 새 책에 물방울이 떨어지지 않게 구경하다 결국 야외 매대로 떠밀렸다. 너무 많은 글자의 압박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내가 이방인이라는 사실이, 이 장소에 낯설고 주머니가 가벼운 자라는 게 급하게 체감되었다. 할인하는 책밖에 사지 못하는 형편으로 비에 젖기 시작하는 3유로짜리 책을 사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추위가 점점 피부로 스며들어 잠시 몸 녹일 겸 들어간 광장 구석의 작은 점포는 기름 냄새가 났고 길고 좁았으며 몸집이 큰 헝가리 여자가 얼룩진 흰 앞치마를 매고 있었다. 붉은 얼룩은, 굴라쉬 수프다! 주인은 긴 국자를 휘휘 저으며 나를 한 번 쳐다보고 벽면에 붙은 메뉴를 정수리로 가리켰다. Gulasch mit Brot 굴라쉬와 빵, 3,5€. 딱 한 가지 메뉴만 적혀 있었다. 나는 기어들어가는 작은 목소리로 주문을 하고 동전으로 계산을 했다. 기다란 바 테이블 끝에 앉아 냄새나는 훈훈한 기운을 느끼면서 주방을 힐끔거렸다. 주인은 한 주먹 정도 크기의 빵 반죽을 꺼내 기름 바른 손으로 얇게 눌러 폈다. 그리고 기름 솥에 빵반죽을 넣어 노릇하게 튀겨냈다. 기름 냄새가 진동한 게 저 튀긴 빵 때문이구나. 내가 알고 있는 딱딱한 독일 빵이 아니라 헝가리는 튀긴 빵을 주는 모양이라고, 순순히 받아들였다. 아직도 이름을 모르는 그 빵은 마치 피테(터키식 식사빵)을 튀긴 것 같은 맛이었다. 기름지고 너무 컸고 너무 뜨거운 빵은 맛있었다.

그리고 엄청난 양의 굴라쉬 수프가 대접에 담겨 나왔다. 내 생각보다 훨씬 붉고 묽은 수프에 고깃덩이가 훨씬 큼직했다. 큼직한 감자와 당근, 셀러리 조각도 묵직하게 들어 있었다. 아마도 주인만의 독특한 레시피인 듯했다. 작은 점포에는 손님이 나밖에 없었고 주인은 낯선 내가 낯선 음식을 잘 먹는지 곁눈질로 자꾸 확인했다.

맛있다. 날씨와 기분이 주는 효과도 기꺼이 받아들인 내 미각은 이 굴라쉬를 아주 맛있게 받아들였다. 나는 허겁지겁 입천장까지 데어가며 그 많던 굴라쉬와 큰 빵을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빵은 몰라도 적어도 이 맛은 레마르크의 소설 속의 맛과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맛이 더 날뛰었다.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굴라쉬 수프에 대한 환상은 계속되었다. 내 고향 음식도 아닌데 이상한 향수가 깃든 것은 아무래도 소설을 너무 자주, 여러번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행히도 홍대 정문 놀이터에서 작은 뒷골목으로 나 있는 코너에 굴라쉬 집이 있었다. 헝가리에서 오래 살다 온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곳으로 대학로의 맥주집이나 헝가리 식당과 달리 카레에 들어가는 크기로 앙증맞게 자른 고기와 감자, 당근이 들어간 부드러운 맛의 굴라쉬였다. 나는 그 골목 끝에 있는 재즈카페를 자주 다녔고 재즈 카페에 갈 때마다 꼭 굴라쉬수프를 먹었다. 흰 빵과 작은 엥커 버터와 함께 하면 오천 원, 커피는 천 오백 원이었다. 밥은 무료로 제공되는 그곳은 늘 대학생들을 북적였고 좁고 긴 테이블이 벽면을 따라 한 번 꺾인 작은 곳이었다. 늘 굴라쉬가게들은 작고 길고 좁았다. 부부는 물가가 올라도 최대한 가격을 올리지 않고 버텼다. 굴라쉬는 겸손한 음식이고 라면처럼 먹을 수 있어야 한다는 철칙을 내세웠다. 그들의 굴라쉬는 마음만큼 맑고 깨끗했고 라면보다 감칠맛이 더 났다. 결국 물가상승률에 패배한 부부가 가게 문을 닫으며 마지막으로 잔뜩 싸 준 수프와 흰 빵을 들고 오던 날은 아직도 생각난다. 뜨거운 김이 서린 봉다리를 감싸 안고 한여름에 터덜 터덜 걸어가던 서운한 마음은 쉽게 잊을 수 없는 것이다. 단지를 가져갈 걸, 이라는 생각도 조금 들었다. 그들의 굴라쉬 식당을 다니는 동안은 적어도 레마르크의 단지 굴라쉬가 생각나지 않았다. 어쩌면 나의 굴라쉬는 그 식당의 굴라쉬였을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다른 굴라쉬는 없을 것이라는 암담한 생각을 했다.


오 년 전, 구로역 부근에 굴라쉬 수프를 파는 카페가 생겼다. 나는 여전히 굴라쉬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고 오래간만에 본 굴라쉬라는 단어에 혀가 성급하게 단맛을 느꼈다. 미국식 소고기 스튜에 가까운 굴라쉬 수프는 만원이 넘었고 시제품 맛이 났지만 나는 1인분을 더 사서 포장했다. 아마 미련이었을 것이다.

이 년 전, 독일 바이에른을 경유하며 새벽까지 남아 졸아든 굴라쉬 수프를 먹었다. 나는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고 매우 목이 아팠다. 비행기에서 내내 구토와 복통에 시달렸다. 짙은 색을 띠는 걸쭉한 굴라쉬 수프, 투박하고 큰 고기 조각이 들어가 있고 짠 굴라쉬 수프는 적합한 식사메뉴가 절대 아니었음에도, 나는 결국 또다시 굴라쉬 수프를 사 먹고야 말았다. 눌은 덩어리마저 있는 거의 마지막 굴라쉬 수프는 탄 맛도 조금 나고 너무 질긴 소고기와 너무 짠 소시지가 들어 있었다. 심지어 나는 맛을 거의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구토는 멎고 위장의 통증은 멈추었다. 딱딱한 빵Brötchen을 찍어 먹을 소스도 거의 없는 졸아버린 굴라쉬라도 나를 진정시키기에 충분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이게 굴라쉬구나!'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레마르크의 소설 속의 독일식 굴라쉬 수프 말이다. 진짜 굴라쉬 수프, 도망간 타국, 후미진 곳에서 풍로에 데워 먹으며 마음을 녹이는, 헝가리 단지에서 숙성된 굴라쉬 수프는, 무슨 맛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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