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스럽게 열리는 책장과 모험으로 떠나는 문.
비밀 공간에 대한, 로망 하나쯤 다들 가지고 있지 않나요?
셜록홈즈의 대저택 복도 끝 아무도 모르게 숨겨져 범죄에 교묘하게 이용되는 자투리 공간이라던가, 허클베리핀이 문을 열고 나올 것 같은 나무 위 아늑한 오두막, 런던 킹스크로스역 9와 3/4승강장에서 비밀스럽게 열리는 호그와트로 가는 통로!
어릴적 나는 비밀 기지가 그렇게 갖고 싶었습니다. 엄마의 화장대에 무방비하게 놓여있던 화장품이나, 여자아이들이 흔히 열광했던 바비 인형에는 그다지 관심없는 나였지만, 오래된 우리 아파트에 아무도 쓰지 않고 방치된 경비 초소는 그렇게 탐이 났습니다.
기어이 나는 동네 꾸러기들을 모아, 비밀 기지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어른들이 모르게 먹을 것을 숨겨두고, '일지'도 만들엇습니다. 여덟,아홉살 아이들도 흔히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는 요즘과는 달리, 통신 수단이라고는 집안 어른을 거쳐야하는 전화기 뿐이었던 시절, 실로 연결한 허술하기 짝이없는 종이 무선통신기도 한대 두었습니다. 기지를 거쳐가는 일원은 일지에 흔적을 남기기로 하고 우리끼리 은밀히 만나는 시간을 정해 메모를 남겼습니다. 함께 모여 떡을 나누어 먹기도 하고, 손전등과 초코바를 넣고 작전을 짜서 모르는 건물에 침투해 들어가는 전략을 공모하기도 했던, 기억들.
집에서 언니와 놀때면 책상이나 피아노에 얇은 이불을 늘어뜨려 움막 같은 공간을 만들고, 몸을 웅크려 드나들며 놀았습니다. 운이 좋게도 우리에게는 이층 침대가 하나 있었는데, 이층에서 일층으로 이어지도록 이불을 늘어뜨리면, 제법 어둡고 비밀스러운 공간이 뚝딱 만들어졌습니다.
그 안에 손전등이며 노트며 잔뜩 들고 들어가서 무얼하며 하루종일 그렇게 속닥속닥 놀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어린 시절의 나는 확실히 은밀한 공간을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어른이 된 지금도 다락에 대한 로망을 버리지 못해, 언젠가는 아파트 복층에 나만의 '바'를 만드는 상상을 합니다. 크, 생각만 해도 너무 멋지지 않나요?
다들 해보면 방치될 뿐이라고 하던데. 그래도 정 해보고싶다면 한번쯤 해봐야하지 않겠어요?
그런면에서 우리가 계약한 상가의 구조는 정말이지 환상적이엇습니다. 9평 남짓 작은 공간이었지만 안쪽에 골방 같은 공간이 나누어져있는데다가, 다락방까지 갖추고 있었으니까요! 물론, 방치되다시피 지내온 긴 세월동안 동네 쥐들의 비밀 통로였겠지만. 그건 손님들께는 비밀로 해두기로 하지요.
우리는 동화책 책방이니까요. 동화같은 로망만 슬쩍 남겨두기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