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이정표-
해외 출장의 가장 큰 장점은, 시간이 지날수록 덧칠이 입혀지고 희미해지는 직장생활의 기억들 속에서,
'아 그 해 언제에는 어느 나라 어디에서 뭘 했었지'라는 영롱한 기억들이 남는다는 것이다.
이제 회사생활이 14년 차로 접어들면서, 울고 웃었던 기억들과 배운 것들 모두 최대한 놓고 싶지 않음에도 사람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출장으로 낯선 나라를 방문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일을 하고, 저녁이나 주말에 다시 오기 힘든 bar나 카페에서 맥주 한 잔 기울이던 기억은 직장생활 굽이굽이에 이정표로 남는다. 이런 경험을 쌓을 수 있게 해 준 회사와, 함께 있었던 동료분들께 고마울 따름이다.
카타르에서의 업무는, UAE에서의 업무보다는 여러모로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사람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데, 부서 선배님이셨던 L과장님과 업무를 하는 만큼모르는 부분은 편하게 여쭤보고 논의하는 분위기가 컸다.
또한 짧게나마 다른 나라에서의 출장 업무를 경험한 직후라 이 시점에 누구에게 어떤 걸 요청해야 하는지,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지 좀 더 감이 잡힌 상태였고, UAE와 비슷하면서도 조금은 더 호젓한 느낌의 카타르에서의 며칠이 나쁘지 않았다.
지사 사무실이 도심에 위치한 만큼, 점심과 저녁 식사를 하면서 자연스레 도심 구경도 할 수 있었고,
모래 바람이 훑고 지나간 직후의 다소 탁한 하늘과 높은 건물, 그리고 요트들이 늘어선 도심을 보며 카타르 특유의 부와 아늑함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출장의 단점은, 그 나라에서 오롯이 몇 년을 버텨낸 현지에서 오래 일을 한 직원분들의 경험만 못하기에, 섣부르게 판단을 내릴 수도 있고, 정말 그 나라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관광지 등을 방문하기는 어렵다는 점일 것이다.
그럼에도 짧게 방문한 이방인이 일과 생활을 병행하며 느낀 점들은, 그 나름대로의 시선과 가치가 있는 것이라 믿는다.
수없이 늘어선 요트를 바라보며, L과장님은 카타르와 국민들의 부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셨고, 풍부한 석유와 천연가스 덕택에 국민들이 누리는 소득 수준과 나라로부터 받는 금전적 혜택도 어마어마하다고 말씀해 주셨다. 기억에 의존해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단지 결혼만으로도 당시 가치로 1억과 주거 혜택을 얻는 등이었던 듯하다.
후일 동남아 국가를 방문하며, 유년 시절 80~90년대 한국으로 나 홀로 회귀한 듯한 감성을 느낄 수 있었다면, 중동 방문은 문자 그대로 '어나더 레벨'의 격차를 실감할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이 나라에 태어남으로써 얻는 부와 '인샬라'(신의 뜻대로)라는 말로 대표되는 사람들의 여유는, 한국에서 점점 치열해지는 경쟁과 빨리빨리에 치이던 나에게는 색다르면서도 부러운 경험이었다.물론 오래 있어보면 또 다른 부분들이 보였으리라.
카타르에서의 출장이 마무리되는 시점에는 L과장님의 안내로 전통시장 '쑥'을 방문할 수 있었다.
정식 명칭은 쑥 와키프(Souq Waqif)로, 아랍어로 '쑥'은 시장을 뜻하고, '와키프'는 '서있다'라는 뜻으로, 원래 물건을 팔던 상인들이 모여있던 곳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를 줄여서 한국인들은 '쑥'으로 많이 통칭하였고, 깔끔한 도보 위 양 옆으로 늘어선 가게들을 거닐며
처음 느낀 '아라비안 나이트'의 대미를 장식할 수 있었다. 물담배를 피우는 현지인들을 보며, K차장님, L과장님과 맥주를 마시며 출장을 마무리할 수 있었고, 때마침 현지 기마경찰들이 순찰을 도는광경도 볼 수 있었다.
선선한 저녁 날씨, 모래 바람이 훑고 지나간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셋이 사진도 남길 수 있었고, 지금은 다른 회사에서 근무 중이신 K차장님과 여전히 첫 회사에서 잘 근무하고 계시는 L과장님과 내가 사진 속에서앳된 모습으로 웃는 모습을 보면, 첫 출장을 떠났던 그때의 기억과 감성이 다시금 오롯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