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달의 무게, 그 누구도 안아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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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그냥 계절이 바뀌는 줄만 알았다.
우리 사이도, 그렇게 익숙한 반복 속에 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멀어지는 걸 몰랐다.
아니, 알아도 모른 척했다.
침묵은 길어졌고,
눈빛은 점점 낯설어졌다.
그의 입에서는 ‘우리’라는 말이 사라졌고,
나는 점점 혼잣말에 익숙해졌다.
같은 식탁에 앉아도 대화는 없었고,
같은 집에 있어도 서로를 부르지 않았다.
나는 대답 없는 사람에게 말을 걸고 있었고,
그는 모른 척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게 사랑의 끝이라는 걸,
나는 너무 늦게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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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택했으니, 따뜻함이 따라올 줄 알았다.
품이 될 줄 알았던 곳은
결국 나를 추락시키는 벼랑이었다.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그들은 돌변했고,
나는 혼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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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9개월.
나는 여전히 출근 중이었다.
생활비는 내가 내야 했고,
그 사람은 말했다.
“너의 노후는 네가 준비해야지.”
그 말은 반복되었고,
그 반복은 점차 진심이 되었다.
가족이라기보단,
계산기를 두드리는 타인 같았다.
그 사람은 내 남편이었고,
나는 그의 집안에서
‘돈 밝히는 독한 년’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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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삭에도 회사를 다니는 나를 두고
시댁 사람들은 말했다.
“돈이 그렇게 좋아?”
그 말은 단톡방에서,
식사 자리에서,
내 면전에서 오갔다.
나는 조용히, 조심스럽게,
그저 참는 법만 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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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절이 부서져 칫솔도 쥐지 못할 때
그는 말했다.
“그 정도로 유세 떠냐? 장애인처럼 굴지 마.”
대상포진, 조기진통, 자궁수축, 임신중독…
병명은 늘었고, 몸은 무너졌고,
나는 아기 하나 품고
바닥을 기듯 견디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나를 일으켜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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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태교를 함께하고 싶었다.
동화책 한 권을 함께 읽어주는 것,
그 작은 마음을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말했다.
“니가 읽어. 니 애잖아.”
나는 혼자 두 역할을 연기했다.
“안녕, 아가야. 오늘은 아빠가 동화책 읽어줄 거야.”
그리고,
“엄마도 여기 있어. 걱정 마.”
목소리를 바꿔가며
하루에 한 줄, 한 줄 책을 읽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이미 혼자 부모가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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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이라도 같이 나가자고 하면
그는 저만치 앞서 걸었고,
뒤처진 나를 향해 말했다.
“저런 몸매로 다니면 창피하지.”
그는 사람보다,
나를 ‘덩어리’로 보았고
그 순간부터 나는
살덩이로 살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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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틀고 울었다.
뱃속 아기가 들을까 봐
물을 세차게 틀고 펑펑 울었다.
그리고…
응급실.
다음 날 또 출근.
다음 날 또 조리돌림.
다음 날 또
혼자서, 혼자서, 혼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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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달 내내,
나는 ‘살기 위해’ 밥을 먹었다기보다
‘살려내기 위해’ 뜨거운 목구멍에
음식을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울음을 삼키며,
아기를 품고 살아야만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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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계절의 끝.
누군가 물었다.
“그런 사람인 줄 몰랐어?”
몰랐다.
정말 몰랐다.
결혼이란 게
그 집안에선 여자를 망가뜨리는 계약서였고,
임신이란 게
그 사람에겐 비난과 지적의 도구였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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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달을 버텼다.
울고, 참고, 도망치고,
다시 참고.
그리고 깨달았다.
우리는 함께한 적이 없었다.
나는
그 계절 내내
그 사람 없이
아기와 단둘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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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 예고
4화. 말하지 못한 진실들
“사랑이 아니라 설계된 함정이었다면,
그 끝은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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