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1주간 월요일] 넘치게 충분한 작은 마음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 (마태 24, 40)

by 어엿봄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너를 향한다. 네가 지금 울고 있다면, 그 이유는 지금 중요하지 않다. 그냥 울어도 괜찮다. 그렇게 많이 아프다고 쓰러져도 괜찮다. 괜찮다고 말하는 내가 너의 마음을 헤아려주고 모두 다 들어줄 테니 진정 괜찮다.


최후의 심판 (마태 24,31-46 참조)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나와 함께 했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20년 전 나는 매우 불안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나는 학업보다는 그 외의 활동들에 열정과 힘을 쏟아내던 젊은이였다. 학생으로서 노동자와 연대하는 것이 진정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일인지, 이 세상은 오직 계급으로만 설명할 수 있어서 둘 사이의 투쟁은 불가피한 것인지 많이 헷갈렸다. 술을 많이 마셨고 또 많이 싸웠고, 울었다. 점차 지쳐갔다. 혁명은 우리 손에 달려있는 것 같지 않았다. 무엇보다 우리들 마음의 따뜻함이 느껴지지 않았고, 차가움에 내가 지녔던 열정과 힘이 사그라들어갔다. 깜깜한 시절이었다. 요동치는 밤바다의 파도가 모든 것을 삼켜버릴 것만 같아 나는 도망쳤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레위, 19,18)

오늘 독서에서도 이웃을 소중하게 대해 거룩하신 우리 하느님처럼 거룩한 사람이 되라고 초대하고 있다. 이웃 사랑의 전제는 항상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 깜깜한 시절 밤바다의 파도는 어쩌면 내 두려움을 먹고 자라난 것인지도 모른다. 내 삶에 함께 해줬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내게 귀를 기울여주고 마음을 나눠주었던 그들이 삶의 모든 장면을 빼곡히 수놓고 있었다. 그들이 내 안의 더 깊은 자리로 들어오려 할 때 달아났다.

밤바다의 거친 파도 소리는 내 내면 작은 아이의 울부짖음이었다는 걸, 문득 깨닫는다. 아이가 굶주렸을 때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헐벗었을 때 입을 것을 주지 않았다. 그렇게 어느 날 나를 찾아왔던 주님을 나는 외면하고 있었다.


고통이 깊을 때 숨을 쉬기가 힘들다. 누군가의 따스한 손길과 마음이 그리운데 차마 나를 내어놓지 못하겠으니 그리 외로움은 더 깊어만 간다.

그런데 참 희한한 건, 내가 아팠던 만큼 그토록 간절히 따스함을 바라고 있는 당신에게 마음이 간다는 사실이다. 어느 날,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위로를 해주고 싶어졌다. 겉으론 웃으며 아무렇지 않다 말하는 그들 안에 울부짖고 있는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건 나의 사랑이다. 이 작은 마음이 높이 솟구치는 파도를 끌어안아내고 있었다. 그 마음의 존재를 알았을 때, 그제야 그 마음으로 내면의 아이를 안아줄 수 있었다. 부드럽고 따뜻했으며 좋은 냄새가 나고 무엇보다 안심이 됐다. 휴.


힘들었던 그 순간들의 아이에게 괜찮다고 말해주고 내게 잔잔히 스며들던 사람들의 사랑을 되살리며 다시 힘을 낸다. 그 작은 마음이면 넘치도록 충분한 건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누군가는 마음의 선행을 한다. 상대를 향한 좋은 마음, 그거면 주님의 벗인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을 통해 주님에게 드린 사랑으로 천상의 영원한 복을 얻기에 충분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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