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1주간 수요일] 사랑을 호소하는 눈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루카 11,32)

by 어엿봄

내가 지금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내게 필요한 것은?

오늘의 말씀 앞에 머무르며 떠올리는 질문이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루카 11, 29.32.)


하느님의 이름으로 분열, 폭력을 조장하는 사람들. 정의는 사랑과 자비의 다른 이름이거늘,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를 두고 다른 이들을 욕하고 짓밟는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 이 정도 세상에 표징 하나쯤은 보여주실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래도 사랑의 주님,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진정한 주님께서 우리네 함께 머무르신다는 것을 말이다.


요나의 설교와 니네베 사람들의 회개, 그리고 그 표징. 사흘 간의 어둠 뒤에 찾아올 빛. 회개의 눈물을 닦아 줄 구원. 그 상징은 여전히 그리스도의 현존을 가리킨단다. 그런데 말이다. 요나보다도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도대체 어떠한 표징이 나는 필요했던 것일까?


오랜 역사와 관습으로 정립해 온 사회적 상식과 정의가 깨지는 이 시대에, 그들이 틀렸음을 단번에 알아채도록 하늘에서 번개라도 쳐주길 기다렸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세상 곳곳의 전쟁이 동시에 멈추고 먹거리가 없는 곳에 음식이 쏟아지며, 추방되던 모든 이민자들이 자신의 안전한 집을 갖는 그런 상상을 해봤다. 그 정도의 표징이라면 충분했을까. 내 삶의 예수님 현존을 믿기에 말이다.


사람들 사이의 벽. 나를 알아주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도 화가 났다. 내 마음을 꺼내 나눌 수 없었던 건 내 탓만은 아니었을 거라고 스스로를 두둔했다. 나를 자유롭지 않게 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어느 순간 내 삶의 일부를 모두 가둬버리고 다른 모습으로 살아왔던 것 같다. 내 과거의 시간과 공간들을 깊은 곳에 묻어버린 채, 그 역사가 형성해 온 내 감정들을 모조리 잊어버린 채 새로운 곳에서 출발하고 싶었다. 그러나 삶의 방식이 변했다고 해서 내 근본이 바뀔리는 없는 법. 화해되지 않은 역사를 딛고 있다면 결코 새 역사로 덮어씌울 수 없다는 건 진리다. 단절의 벽은 허물어져야 한다. 그러나 단 한순간의 기적으로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다. 내가 상상하는 표징, 새롭게 주어질 어떤 틀과 형식으로는 구원을 이뤄낼 수가 없다. 어두운 밤을 통과하여 가슴을 치고 울어야 한다. 사랑을 그리워하는 눈물이다. 사랑 없이는 구원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자각이며, 새로움을 간절히 바라는 희망찬 호소다.


내 앞에 존재하는 당신에게 사랑의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어찌 우리 시대의 분열을 그들의 탓으로 돌릴 수 있겠는가. 따뜻한 마음이 없었던 적이 없다. 다만 잊어버리고 느끼려 하지 않았을 뿐이다. 화해하자. 현존하는 나를 만나고, 주님을 만나자. 아무런 변화 없는 작은 내 일상에서 내가 행복하기를 빌어주자. 그리고 그 행복을 나누자.


내가 바라는 것, 내게 필요한 것은 사랑을 흘리는 행위.

세상에 마음이 아프다. 아픔이 무엇인지 알기에 나는 여러분이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눈물은 뜨거운 사랑을 담아 흐른다. 거친 말을 쏟아내는 그의 입과 힘센 발길질을 해대는 몸에 이 사랑이 가 닿을까. 구원의 방식은 내 상상을 분명 뛰어넘는다. 따라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또 바라는 대로 주님께 호소한다. 표징은 중요하지 않다. 세상이 기대하는 표징의 틀을 뛰어넘어 나는 나를 드러낼 것이다. 그 자유로움이 이 순간 내게 허락된 당신의 표징이다. 어둠의 밤을 통과하며 내 감정을 마음껏 모두 쏟아 당신께 호소할 때, 당신은 내 마음속 작은 울림으로 내게 말할 것이다.


"내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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