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물건

오래 함께한 물건들에 대하여

by 시절청춘

중사 시절, 문득 컴퓨터를 배우고 싶어 학원에 등록한 적이 있습니다.


마침 부대에도 막 PC가 보급되던 때였습니다.



결혼 전, 모아둔 돈을 모두 털어 약 200만 원에 제 생애 첫 PC를 장만했습니다.


특별한 이유였기보다는 게임을 해보고 싶다는 단순한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선택은 제 삶의 방향을 조금 바꾸었습니다.


야간 전문대를 전산과에 다니면서 하드웨어에도 관심이 깊어졌고, 조립과 설치 정도는 쉽게 해내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컴맹에 가까워졌지만, 당시에는 나름 ‘브레인’ 소리를 들을 만큼 열정적이었습니다.



이후에는 거의 2년에 한 번씩 PC를 새로 조립했습니다.


이유는 늘 같았습니다.


최신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요즘의 저에게 PC는 단순히 “작동만 하면 된다”는 기준으로 바뀌었습니다.



전자 제품은 여전히 좋아합니다.


TV는 화질을, 음향 기기는 음질을 따지는 편이지만 전문가라기보다는 그냥 제 기준에 맞는 것을 고릅니다.


한때는 대기업 제품만 샀지만, 7년 전쯤 행사로 중소기업 TV를 구입했습니다.


‘5년만 버티면 된다’는 생각이었는데, 아직도 멀쩡히 작동합니다.


가끔 화면이 말을 안 듣거나 밤 장면이 흐려지기도 하지만, 일상에는 불편함이 없습니다.


바꾸고 싶은 제 마음과 달리, 여전히 자리를 지키는 애물단지 같은 존재입니다.



돌아보면 제 곁의 물건들은 유난히 오래 버팁니다.


세탁기, 냉장고, 김치냉장고 모두 10년을 훌쩍 넘겼고, 자동차도 10년 넘게 타고 있습니다.


바꾸고 싶은 욕심은 늘 있지만, 막상 바꾸려 하면 아까운 마음이 듭니다.



생각해 보니 처음 PC를 산 이후에는, ‘갖고 싶어서’ 라기보다 필요해서 물건을 샀습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한 번 들인 물건은 오래 함께하게 됩니다.


경제를 돌리지 않는 습관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 손에 들어온 물건이 오랫동안 내 곁을 지켜주고, 삶의 시간을 함께 버텨주는 것 또한 소중한 의미가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물건을 오래 쓴다는 것은 단순한 절약이 아니라, 삶을 함께하는 또 다른 동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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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이미지 출처] Carat 생성 (구글 이마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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