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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밤바'를 들으며 그려보는 친구

노래로 시작하는 이야기 2

by 시절청춘

영화를 보다 보면, 많은 노래들이 주제가로 흘러나온다.


물론 가수의 일대기를 다룬 음악 영화들도 많다.


내가 최근에 본 음악 영화는 "보헤미안 랩소디"였다.


“최근”이라 하기엔 조금 지났지만, 힘들던 시절 혼자 극장에 찾아가
기분을 달래던 기억이 아직 선명하다.


극장 안을 울리던 웅장한 사운드,
노래가 탄생하던 순간,
그리고 가사가 품은 의미를 하나씩 알아가며
그 노래들이 더 깊게 마음속으로 들어왔고, 혼자서 눈물을 흘리고 나왔었다.


이후 OTT로 몇 번 다시 봤지만,
극장에서 느꼈던 그 감동은 다시 오지 않았다.




중학교 시절, 내게는 친한 친구가 있었다.


크게 싸운 적도 있다. 물론, 내가 일방적으로 얻어맞았지만…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한 번 부딪힌 뒤 오히려 더 가까워졌다.



그 친구는 할머니와 단둘이 살았다.


지금도 기억난다. 초가지붕 아래에서 늘 밝던 그 친구의 얼굴.


산에서 지게로 나무를 해 군불을 때던, 가난하지만 아늑했던 집이었다.



그래도 그 친구는 공부도 잘했고, 장기도 잘 두었다.


또 다른 공통점은 노래를 좋아했다는 것.


물론, 취향은 달랐다.


나는 이선희, 그 친구는 김범룡의 열렬한 팬이었다.


어느 날 교실에서 장기자랑이 열렸다.


그 친구는 김범룡의 "그 순간"을 불렀다.


아직 TV에도 나오지 않았던 신곡이라
후렴구가 낯설어 친구들이 웃었지만,
그 친구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어느 날, 우리는 방에서 작은 약속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일본으로 배낭여행을 가자는 것이었다.


결국 현실에 밀려 흐지부지되었지만,
그때의 설렘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고등학교 진학과 함께 우리는 다른 길을 걸었다.


그 친구는 서울의 기숙사가 있는 학교로,
나는 진주의 학교로 향했다.



그러던 어느 방학 때 고향에서 다시 만났다.


그 친구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야, 영화 하나 봤는데 주인공이 진짜 멋있더라. 나 기타 배워야겠어.”


그 영화가 바로 "라밤바"였다.



그 친구는 한참 동안 영화 얘기를 멈추지 않았다.


얼마 후, 나도 그 영화를 봤다.


동시상영관의 스크린 속 주인공은
정말 기타 하나로 세상을 바꿔버릴 듯 멋있었다.




내가 군대를 가고 첫 휴가를 나와서 그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졸업 후 취직을 했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다른 일자리를 찾고 있었다.


숙식할 곳이 없어, 신문보급소에서 숙식하며 배달일을 하고 있었다.


그 뒤에도 종종 연락하며 안부를 주고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친구가 불쑥 찾아와 식사를 함께했다.


그리고 조심스레 말했다.



“나 대학에 가고 싶은데… 입학금 좀 빌려줄 수 있을까?
꼭 갚을게. 다른 데는 말을 할 수 있는 곳이 없어.”



간절한 그 눈빛과 말에 순간 미안하고, 난감하기만 했다.


그때 나는 동기에게 사기를 당해 적금을 모두 잃은 상태였다.


“미안하다. 나도 지금 밥값 낼 돈도 없다.”



그렇게 우린 어색하게 헤어졌다.


그것이 마지막 만남이 될 줄은 몰랐다.




그 후,
그가 지금의 이천 하이닉스에 취직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잘 되었고, 잘 지내겠거니 믿으며
나 역시 바쁘게, 현실에 파묻혀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첫 추석에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살고 있던 누나에게 그 친구 소식을 알고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믿고 싶지 않은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 친구, 몇 년 전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어. 이곳에 내려와 있다가...”



순간, 머리를 세게 맞은 듯 멍해졌다.


그리고 이유 모를 죄책감이 밀려왔다.


그때 내가 도와줬다면 달라졌을까?


하지만 아무도 그가 어떤 고통 속에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지금도 그 친구가 그리울 때면
나는 다시 '라밤바'를 보고, 그 영화 음악을 듣는다.


비운의 가수 '리치 밸런스'의 노래를 '로스 로보스'의 음성으로 들으며
하늘로 먼저 떠난 친구를 떠올린다.


이제는 사라졌지만, 항상 내 방안 테이프 꽃이 한켠에는
그때 그 영화음악 테이프가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노래는 잊고 지낸 사람을 다시 불러내는, 기억의 또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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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이미지 출처] Carat 생성 (씨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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