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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군인의 노래'를 들으며

노래로 시작하는 이야기 3

by 시절청춘

나는 1990년부터 군 생활을 시작했다.


그때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세대는 없었지만, 월남전에 참전했던 선배 군인들은 부대에 남아있었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영화나 드라마 속 군대는 얼마나 미화되어 있었는지를 깨닫곤 했으며, 실전은 정말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분들의 눈빛은 유난히 날카롭고, 살기까지도 서려 있었다.


마주 보고 있으면 몸이 오싹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 시절의 군인들은 유독 실제보다 나이가 많이 들어 보였다.


아마도 훈련이 많았고, 야외에서 지내는 시간들이 많았던 것이 노화의 첫 번째 원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땐 병사들도 왠지 다들 어른 같이 느껴졌고, 40대 초반 정도의 인사계도 50대는 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시절에는 단체 회식이 많았다.


대부분은 가게를 빌려서 했지만, 연말회식은 달랐다.


연말에는 주로 부대 안에서 음식과 술을 준비하여, 송년의 밤을 열었고,
간부들은 부부 동반으로 참석해 빙고게임 같은 것도 하면서 선물도 나눠주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소박하고 소소한 자리였지만, 그 시절에는 큰 행사였다.



술이 돌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등장하던 순서가 있었다.


바로 노래자랑.



당시 군대 분위기에서 빠질 수 없는 건 트로트였다.


그땐 ‘트로트’ 대신 ‘뽕짝’이라는 말을 더 자주 썼다.


나 같은 20대 초반의 어린 군인에게 트로트는 많이 낯설었고, 좋아하지도 않던 장르였다.


나는 당시 슬픈 발라드나 그룹사운드의 노래가 더 익숙했었다.


그래서 노래를 곧잘 부르긴 했어도, 회식 분위기에 맞춰 신나는 트로트 곡을 찾아 부른다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내가 고르고 불렀던 노래는 현인 선생님의 '굳세어라 금순아'나 '신라의 달밤' 정도였었다.


여하튼 모두들 각자의 노래를 신나게 부르며 놀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다가 회식이 종료되는 시간이 다가오면, 마지막 곡은 언제나 동일했었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늘 양희은의 "늙은 군인의 노래"로 끝이 났다.


나 태어난 이 강산에 군인이 되어
꽃 피고 눈 내리기 어언 삼십 년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나 죽어 이 흙 속에 묻히면 그만이지…


이 노래는 술기운이 돌고, 모두가 떼창으로 따라 부르기 시작할 때면

묘한 울컥함이 밀려왔다.


처음 들었을 때부터,
이상하게도 귀에 익숙하게 스며들었다.




어쩌면 이제는 내가 그 노래 속 ‘늙은 군인’이 되어 있다.


당시에도 30년 넘게 복무한 이는 한두 분뿐이었지만,
그 자리의 모든 군인들이
그 가사 속 자신의 청춘을 겹쳐 보았던 것 같다.



세월이 흘러 이제 군복을 벗는 나도
그 노래가 들리면 그 시절의 냄새와 공기가 그대로 떠오른다.


만약 퇴역 전에 다시 노래를 부를 기회가 있다면,
마지막 노래로 꼭 '늙은 군인의 노래'를 불러보고 싶다.



노래는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한 시대의 젊음을 선명하게 기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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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이미지 출처] Carat 생성 (나노 바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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