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로 시작하는 이야기 5
나는 어린 시절 만화책을 유난히 좋아했다.
보통 30~40권씩 빌려와 집에 쌓아 두고 보곤 했고,
중학교 때는 동네 단골 만화방에서 가게를 봐주며 마음껏 만화를 읽을 수 있었다.
그 시절 좋아하던 작가는 이현세, 박봉성, 황제 같은 분들이었다.
특히 이현세 작가님의 작품은 지금도 여전히 좋아한다.
박봉성 작가님의 경우, 문하생이 그린 듯한 그림체가 눈에 띌 때면
조금 맥이 빠져 보지 않곤 했지만,
초기작의 그림체는 정말 매력적이었다.
요즘은 웹툰이 대세지만, 나는 여전히 종이책을 좋아한다.
전자책보다 종이책을 손에 들었을 때의 감촉과 냄새,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가 아직도 더 편하다.
어느 날, ‘보물섬’이라는 만화 잡지가 등장했다.
용돈을 모아 사 보곤 했는데,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한가득 실려 있어 정말 보물 같은 잡지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했던 작품은 ‘아기공룡 둘리’와 ‘달려라 하니’.
TV 애니메이션으로 방영될 만큼 당시 최고의 인기작이었다.
그전까지는 번역된 일본 만화를 보며 자랐지만,
‘보물섬’에서 처음 만난 국내 작가들의 작품은
한국적인 정서와 감정이 살아 있어 유독 더 좋았다.
올해 10월, ‘달려라 하니’의 극장판 ‘나쁜 계집애 : 달려라 하니’가
40년 만에 개봉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아쉽게도 보지는 못했다.
사실 ‘달려라 하니’를 좋아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주제가 때문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 이선희.
그분이 부른 주제가가 너무 좋아서
'달려라 하니'를 챙겨 보곤 했던 기억이 난다.
1988년, TV에서 애니메이션이 방영되던 시기,
나는 형편이 어려워 혼자 자취를 하며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허름한 자취방에서 외로움에 잠겨 지내던 나는
친구들 집으로 TV를 보러 가곤 했다.
그때 들었던 주제가의 가사는
어쩌면 그 시절의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위로였는지도 모른다.
1. 난 있잖아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하늘땅만큼
엄마가 보고 싶음 달릴 거야 두 손 꼭 쥐고...
2. 난 있잖아 슬픈 모습 보이는 게 정말 싫어 약해지니까
외로워 눈물 나면 달릴 거야 바람처럼...
3. 난 있잖아 내 별명 악바리가 맘에 들어 그래야 이기지
모두모두 제치고 달릴 거야 엄마 품으로...
가사를 좋아했던 이유도 지금 생각하면 단순했다.
힘들고 외로울 때면,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막내였고, 어린 마음은 더 쉽게 허물어졌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이 노래는 내 플레이리스트에 남아 있다.
어머니가 그리워지는 날이면 조용히 이 노래를 듣는다.
그리고 조용히 힘을 낸다.
아내에게조차 말할 수 없는 가장의 무게가 버거울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늘 어머니였다.
그래서인지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가슴 한 켠이 아릿하게 저려온다.
“보고 싶네요, 어머니.”
가장 외로웠던 순간을 버티게 해 준 건, 결국 어머니를 향한 마음이었던 것 같다.
[커버 이미지 출처]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