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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속 목소리로 전한 사랑의 세레나데

노래로 시작하는 이야기 6

by 시절청춘

20대 초반, 여자친구가 없던 나는

후배들의 소개팅에도 나가보고, 단체 미팅에도 참석해 봤다.


하지만 어쩐지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여자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늘 있었지만

현실에서 만나는 이성 앞에만 서면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재미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후배의 여자친구가 말하던

“선하고 착하신 분 같아요.”라는 말도

그때는 칭찬인 줄 알았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그저 무난하고 심심한 사람이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오래 이어지지 않자

현실에서는 인연을 만들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펜팔이었다.


얼굴을 보지 않고, 글로만 마음을 이어가는 관계.


그렇게 나는 아내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편지로 시작된 인연은

어느새 서로를 그리워하는 감정으로 자라났고,

전화를 통해 깊어졌다.


일반 전화기 앞에 앉아

밤을 꼬박 새워 이야기를 나누던 날도 있었다.


그날은 마음속 깊은 이야기까지 모두 꺼내놓았고,

아내는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얼굴을 보지 않았지만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가까워진 듯했다.



그 뒤, 나는 아내가 있는 도시로 내려가

첫 만남을 가졌다.


어색함도 있었지만 곧 편안함이 찾아왔다.


일요일 하루 종일 같은 레스토랑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고,

헤어지기 전 나는 한동준의 CD를 선물했다.


특별히 한 곡에 밑줄을 그어

“꼭 들어보라”라고 말하고 돌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그 노래를

나에게 직접 불러 달라고 요청했다.


처음엔 부끄러워 거절했지만

결국 전화기 너머로 조심스레 노래를 불러주었다.


...
너를 사랑해
영원히 우리에겐 서글픈 이별은 없어
때로는 슬픔에 눈물도 흘리지만
언제나 너와 함께 새하얀 꿈을 꾸면서
하늘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워 우 워 우 워 너를 사랑해

한동준의 '너를 사랑해 ' 노래를 들으며 아내는 행복해했다.


그리고 그해 크리스마스,


아내는 나를 찾아왔고

그날부터 우리는 진짜 연인이 되었다.



지금도 가끔 그 노래를 함께 듣지만

아내는 예전처럼 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잊어버린 것인지,


아니면 괜히 요청해서 지금까지 내가 놀리는 것처럼 느끼는 건지

그건 모르겠다.



그래도 그 노래만큼은

내 젊은 시절의 가장 순수한 사랑 고백으로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아 있다.



진심을 담은 한 곡의 노래가, 인연을 사랑으로 바꾸기도 한다.


[커버 이미지 출처] Carat 생성(나노 바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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