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로 시작하는 이야기 21
90년대의 군 생활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병사들이 생활하던 내무반은 소대 단위 병력이 모두 함께 생활하는 침상형 구조였다.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일렬로 누워 잠을 자던 공간.
개인 침대에서 10명 이내로 생활하는 요즘의 모습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밀도 높은 공간이었다.
말년 병장부터 이등병까지, 계급과 나이를 막론하고 한 내무반에서 함께 지냈다.
중대에는 세 개의 내무반이 있었고,
인원이 적은 소대와 중대본부가 함께 생활하는 곳도 있었다.
그렇다 보니 내무반마다 분위기와 색깔이 분명히 달랐다.
소대 선임하사의 성향 따라 병사들의 분위기도 자연스럽게 닮아갔다.
내가 속한 소대는 비교적 점잖고, 소위 말하는 엘리트들이 모여 있었다.
분위기도 다소 자유로운 편이었고, 서로를 존중하는 공기가 있었다.
무엇보다 당시에는 병사들 대부분이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적게는 두 살, 많게는 다섯 살 이상 차이 나는 병사들도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병사들을 통제하기보다는 함께 어울리는 쪽을 택했다.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시 병사들 복무기간이 36개월이었기에, 긴 군 생활 속에서 정이 들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해 크리스마스이브.
중대에서는 연말 회식 겸 장기자랑이 열렸다.
간부보다는 병사들이 중심이 된, 말 그대로 즐기는 자리였다.
막걸리가 오가며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달아올랐고,
춤과 노래가 이어졌다.
한참 즐기다 보니 어느새 마무리할 시간이 다가왔다.
그때 우리 소대원 두 명이 기타를 들고 나와 노래를 부르겠다고 했다.
첫 곡은 조용하고 분위기 있는 노래였다.
당시 큰 인기를 끌던 이오공감의 〈한 사람을 위한 마음〉.
언제 오더라도 너만을 기다리고 싶어
다시 처음으로 모든 걸 되돌리고 싶어
이제는 어디로 나는 어디로
아직 너의 그 고백들은 선한데
너를 닮아 주었던 장미꽃도
한 사람을 위한 마음도
잔잔한 기타 소리와 노랫말이 흐르자
시끌벅적하던 회식장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노래가 끝나자 여기저기서 “앵콜”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둘은 이미 준비라도 한 듯, 곧바로 다음 곡을 시작했다.
처음 듣는 노래였지만 멜로디가 유난히 흥겨웠고,
크리스마스이브의 분위기와 묘하게 잘 어울렸다.
그 노래를 끝으로 그해의 크리스마스이브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그날 밤, 나는 병사들이 불렀던 그 노래의 원곡이 너무 궁금해
시내의 레코드 가게를 찾았다.
제목도 모르고, 정확한 멜로디도 기억나지 않아
중간 부분을 음으로 흥얼거리며 노래를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아저씨는 처음엔 고개를 저었지만,
내가 몇 번이고 반복하자 갑자기 말했다.
“아… 이 노래겠네.”
그리고 테이프 하나를 내밀었다.
“이 노래 맞을 거야.”
정확했다.
내가 찾고 있던 바로 그 노래였다.
그 자리에서 테이프를 샀고,
그 이후로 나는 한동안 이 노래를 질리도록 들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자연스럽게 이 노래를 찾게 된다.
이승환의 〈크리스마스에는〉.
눈 내리는 아름다운 생각나는 그 시절
즐겁던 기억들 이젠 모두 다 사라져 버리고
희미해진 아득한 추억 언제 다시 그곳에서
우리들 노래하며 웃을 수 있나 그때처럼
그 거리를 우리들 얘기하며 걸을 수 있나
크리스마스에는 그 거리에 작은 소망들이 피어나
그 친구들 환한 웃음 다시 볼 수 있겠지
우리들의 쌓인 얘기 하얗게 밤을 새겠지
젊은 날의 감성은 많이 사라졌지만,
30년이 지난 지금도
이 노래만큼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꼭 듣고 싶어진다.
오늘은 이 노래와 함께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노래들을 천천히 들어보며,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낼 생각이다.
어떤 노래는 계절을 기억하게 하고,
어떤 노래는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어떤 노래는
그 시절의 공기와 온기까지 함께 데려온다.
내무반 바닥에 깔린 매트리스,
기타 소리,
조용해졌던 크리스마스이브의 밤.
그 모든 것이
지금도 이 노래 한 곡에 담겨져 있는 것 같다.
시간은 흘러가도, 노래는 그 시절의 마음을 그대로 남겨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