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틀 녘, 어둠이 빛을 기다리는 가장 정직한 시간

어둠이 걷히는 자리에서 만난 미래

by 시절청춘

동틀 녘의 약속



처음의 시작은
두려움과 설렘이
위태롭게 공존하는 시간.


그 막막한 두려움을 견뎌내야
비로소 한 발자국을
내밀 수 있는 법이다.


누군가는 그 두려움에
뒷걸음질 쳐 숨어버리지만,
누군가는 그 떨림을
새벽을 여는 설렘으로 바꾼다.


여명이 오기 전,
가장 짙은 어둠을 대하는
그 순간의 마음에
나의 미래가 숨 쉬고 있다.


두려움보다
기어코 이겨내겠다는 의지가 앞설 때
우리는 비로소 밝은 여명을 맞이한다.


어둠을 뚫고
저 멀리 번져오는 붉은 물결,
먼 동이 떠오른다.


산 정상에 서서
마침내 차오르는 저 붉은빛을 향해
뜨거운 환호를 보낸다.





매일 새벽, 저는 어두운 밤하늘 한쪽 구석에서부터 붉은 기운이 서서히 번져오는 장면을 마주합니다.

예전에는 무심히 스쳐 지나갔던 풍경이지만, 요즘은 거의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이 경이로운 반복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계절에 따라 해가 뜨는 위치는 조금씩 달라지고 날씨에 따라 그 표정도 바뀌지만, 어둠을 밀어내는 그 붉은 빛깔만은 한결같습니다.

남들보다 조금 이른 출근길, 세상이 아직 잠들어 있을 때 하루를 시작하는 덕분에 저는 매일 아침 '동이 트는 순간'의 목격자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신비로웠습니다.

어떤 날은 한 폭의 유화 같은 장관에 넋을 잃기도 했죠.

하지만 대부분의 날들 속에서 제가 마주하는 건, 화려한 태양이 솟구치기 직전,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꿈틀거리는 '여명'의 기운입니다.

생각해 보면 참 아이러니합니다.

사람들은 매년 새해가 되면 그 붉은 해를 보겠다며 밤을 새워 동해안으로 달려가곤 합니다.

저 역시 한 때는 그 대열에 합류했으나, 얄궂은 날씨 탓에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해를 보지 못하기도 했었어요.

그런데 정작 그토록 특별하게 여기며 찾아 헤매던 풍경을, 저는 이제 매일의 일상 속에서 덤덤히 마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해뜨기 직전, 하루 중 가장 어둡다는 그 시간.

매일 반복해서 보는 '동틀 녘'은 우리가 인생에서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거나 도전할 때와 닮았습니다.

그것은 무모해 보일 수도 있고, 인생의 항로를 바꿀 결정적인 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변화를 두려워합니다.

익숙한 어둠, 익숙한 현실에 안주하며 밝아오는 빛을 향해 나아가기를 주저하죠.


사실 저에게도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걷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 저에게 '동틀 녘'은 너무나 먼 남의 이야기였습니다.

매일이 칠흑 같은 어둠이었고, 짙은 구름에 갇힌 해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막연하고 애달프게 동이 트기만을 기다리는 것뿐이었습니다.


기나긴 어둠의 끝자락, 드디어 하늘에서 희미하지만 분명한 붉은빛이 감지되었을 때의 전율을 기억합니다.

세상이 완전히 밝아진 것도 아니었지만, 그 작은 징후만으로도 저는 세상을 다 가진 듯했습니다.

마음속에는 이미 여명이 밝아왔고, 아침을 맞이할 수 있다는 희망이 싹트기 시작했으니까요.

그 시간을 지나오며 알게 되었습니다.

가장 짙은 어둠은 빛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빛이 올 자리를 가장 정직하게 기다리는 시간이라는 것을요.

지금 제가 바라보는 창밖의 동틀 녘처럼, 완전히 밝지도 아주 어둡지도 않은 이 순간.

그것은 우리에게 잠시 멈춰 서서 사색할 틈을 내어주는 배려일지도 모릅니다.

억지로 서두르지 않아도, 조금만 기다리면 반드시 밝은 빛이 찾아온다는 믿음을 가지라고, 새벽하늘이 제 어깨를 토닥여주는 것만 같습니다.



터널과 동굴의 차이는 '출구'의 유무다. 지금 당신이 걷고 있는 어둠이 힘들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막힌 동굴이 아니라 빛으로 향하는 터널을 지나고 있다는 증거다.



<김범수 - 지나간다>

https://youtu.be/Mm5HMsUepKc?si=i1P-DeqeZA0Nj3GL


[커버 이미지 출처] Carat 생성 (나노 바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