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명(未明), 가장 투명한 나를 만나는 시간

푸른 회색빛의 시간, 다시 맑아지기 위하여

by 시절청춘

투명한 이끌림


처음 본 순간 알았다.

영혼이 비칠 듯 투명하여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사람.


그 맑은 눈을 바라보면

탁했던 내 마음마저

덩달아 맑게 헹궈지는 듯했다.


어디서 왔을까,

이토록 깨끗한 빛은.


그녀의 눈동자 깊은 곳에는

어둠이 걷히는 새벽의

서늘한 푸른빛이 감돌고 있었다.


아침의 가장 맑은 시간,

미명(未明)처럼 다가온 그녀의

그 푸르스름한 세계로 나는 걸어 들어갔다.





완전히 해가 뜨기 전,

세상이 가장 고요하면서도 차갑게 서서히 깨어나는 그 순간을 떠올리면

저는 '푸른빛이 감도는 회색'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잿빛 어둠 속에 푸른 기운이 살며시 스며드는 찰나,

우리는 그 빛을 미명(微明)이라 부르곤 하지요.


그 오묘한 색을 마주할 때면 어김없이 고혹적이고 투명한,

마치 맑은 호수처럼 깊고 맑은 어느 누군가의 눈동자가 떠오릅니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말이 있듯, 예전엔 눈만 봐도 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다고들 했지요.

젊은 시절의 저는 이런 말을 그리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 맑은 눈을 실제로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대부분 어른들의 눈에는 피로가 짙게 배어 조금은 흐릿하거나, 붉은 실핏줄이 드러나 있습니다.

저 또한 거울을 들여다보면 별반 다르지 않은 눈을 하고 있죠.

삶의 무게를 견디다 보니 마음의 창문은 닫혀 가고, 그 위에 먼지가 쌓인 까닭이겠지요.

그래서인지 아이들의 티 없이 맑은 눈동자를 보면 왠지 그 속으로 풍덩 빠져 헤엄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마도 잃어버린 순수를 그리워하는 마음 때문이겠지요.


20대 초반, 저는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녀와 처음 마주한 날의 설렘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성인이면서도 그녀의 흰자위는 유난히 맑고 푸른빛이 돌았지요.

정말 선하고 때 묻지 않은 영혼 같았습니다.

그녀의 눈빛은 제가 오랫동안 동경해 온 새벽의 색, 바로 그 '푸른 회색빛'을 닮아 있었습니다.

신비롭게까지 느껴진 그 눈동자의 주인은 지금 제 아내가 되어 곁에서 함께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 지금의 아내 눈은 예전처럼 투명하게 반짝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함께 보낸 수많은 시간,

치열했던 삶의 무게가 그녀의 눈에도 옅은 안개처럼 스며들었기 때문이겠죠.

그 변화가 어쩐지 내 탓만 같아 마음 한구석이 아릴 때도 있습니다.




저는 요즘 매일 새벽 4시 반이 되면 자연스레 눈이 뜨입니다.

어둠이 걷히고 맑은 정신이 깨어나는 미명의 시간은 그저 단순한 아침이 아닙니다.

탁해진 저의 영혼을 닦아내는 투명한 통로 같은 시간이지요.


창밖으로 푸르스름한 어둠을 바라보며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따뜻한 커피를 내립니다.

그리고 시를 쓰고 책을 읽습니다.

남들이 말하는 '미라클 모닝'을 따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 소음이 시작되기 전,

아직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이 순수한 시간에 기대어 다시금 나 자신을 찾고 싶어서죠.

어쩌면, 한때 아내의 맑았던 그 눈동자처럼 살아가고 싶다는 바람이 숨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새벽이 정답은 아닙니다.

누군가에게는 늦은 밤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나른한 오후가 저마다의 미명일 수도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건 시간이 아니라, 일상에 지쳐 탁해진 나를 잠시 내려두고

가장 투명해질 수 있는 '자기만의 틈'을 찾아보고 마주하는 일이 아닐까요.



하루에 한 번쯤은 나를 맑게 닦아줄 시간의 거울 앞에 서야 한다.


<성시경 - 두사람>

https://youtu.be/4JG-PmveayI?si=VOQmmZqXlSp0eJDu


,[커버 이미지 출처]Carat 생성 (나노 바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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