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치기 (숲의 우거진 상태를 다스리거나, 숲 속으로 길을 내어 나아
고요한 아침,
어둠의 흔적이 채 가시지 않은
안개 자욱한 숲 속을 조용히 걷는다.
숲의 짙은 향기와
사방에서 들려오는 자연의 숨소리에
나의 오감을 가만히 맡겨본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숲이지만
작게 바스락거리는 생명의 소리들이
내가 가야 할 길을 일러준다.
적막을 깨는 나의 낙엽 밟는 소리.
불청객의 방문에 화들짝 놀란 듯
분주히 몸을 숨기는 자연.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함께 호흡하고 서로 놀라며
이내 가슴을 쓸어내린다.
안도감 끝에 멈춰 선 움직임들,
그제야 깨닫는다.
이 깊은 숲 속에 들어선 내가
자연의 낯선 이방인이었음을.
내가 다시 걸음을 멈추고 숨을 죽이자
자연은 다시 나를 반기듯
본연의 움직임으로 돌아가고,
숲은 처음의 평온을 되찾는다.
"길이 있어 걷는 것이 아니라, 덤불을 젖히고 나아가야 비로소 한 줄기 '숲길'이 열린다."
'내가 과연 이 생활을 계속해 나갈 수 있을까?'
처음 군복을 입었던 90년대 초반, 저는 스스로에게 매일 이 질문을 던지며 숱한 갈등의 밤을 보냈습니다.
제 성향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직업 같았습니다.
체력이 뛰어나지 않았고 성격도 소심한 편이었죠.
같이 훈련받은 동기들도 제게 "너는 절대 직업 군인을 할 수 없는 유형"이라고 단언할 만큼, 제 말투나 인상에는 강인함이나 매서움이 없었습니다.
가정 형편 때문에 선택한 길이었기에, 그저 의무 복무 기간인 5년만 버티고 떠나리라 다짐했었습니다.
당시의 군대는 강압적이고 폐쇄적이었습니다.
안전을 무시한 지시가 난무했고,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안 되면 되게 하라'는 구호가 맹목적으로 실천되던 시기였습니다.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던 저는 선임들의 눈에 불만 가득하고 굼뜬 멍청한 후배로 보였을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제게 더 모질고 거칠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 거친 숲을 탈출하고픈 마음만 품고 살았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런 제가 36년이라는 긴 세월을 버텨냈다는 사실이 어쩌면 기적처럼 느껴집니다.
그 기적은 아내의 따뜻한 조언과, 매 순간 제가 내렸던 절실한 선택들이 모여 만들어진 것입니다.
저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깊고 안개 낀 숲 속에서, 손을 더듬거리며 저만의 길을 찾아다녔습니다.
처음엔 이 숲이 제 공간이 아닌 듯 겉돌았지만, 조금씩 지형을 익히고 적응하며 제가 숨 쉴 수 있는 동선을 개척했습니다.
그리고 그 숲 속에 저만이 머물 수 있는 작은 움막을 지었습니다.
그곳은 숲의 생태계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지친 동물들과 새들이 날아와 함께 쉬어갈 수 있는 평화로운 쉼터가 되었습니다.
제가 가는 숲길이 늘 평온했던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쓰러진 나무와 억센 수풀을 베어내며 억지로 길을 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남들이 돌아가라고 만류할 때도, 저는 기꺼이 땀을 흘리며 더 빠르고 안전한 길을 만들었습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아무도 찾지 않던 저의 쉼터에 사람들이 제가 닦아놓은 길을 따라 하나둘 찾아와 쉬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저 혼자 살겠다고 안주했다면 결코 만들어지지 않았을 길입니다.
제가 개척한 길을 따라 후배들이 무사히 걸어오는 모습을 볼 때면 흐뭇한 감정이 피어나곤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저는 36년간 머물렀던 그 익숙한 숲을 완전히 벗어나려 합니다.
저 앞에는 제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또 다른 숲의 입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떤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지, 어떤 장애물과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알 수 없기에 다소 두렵고 막막한 것도 사실입니다.
어쩌면 누군가가 제 인생 전반전처럼 이미 닦아놓은 좋은 길을 운 좋게 만날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잘 닦인 평탄한 길이든, 안개가 자욱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덤불이든 제게는 중요치 않습니다.
지난 36년의 '숲 치기' 경험이 제 몸에 새겨져 있으니까요.
저는 언제나 그랬듯 저만의 길을 묵묵히 개척해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여정에는, 매일 아침 안개를 걷어내듯 써 내려가는 저의 '글'이 든든한 길동무가 되어줄 것입니다.
숲은 스스로를 가두지 않기에 울창한 숲이 되고, 사람은 낯선 두려움 속에서도 스스로 길을 내기에 마침내 꿈을 이룬다.
《최유리 - 숲》
[Gemini 활용 이미지 생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