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 땅을 밀어 올리는 초록의 용기

틔움 (씨앗이 싹을 틔우는 행위, 혹은 막혔던 것을 통하게 함)

by 시절청춘

싹을 틔우는 시간



깜깜한 적막이 흐르고,

사방은 차갑고 단단하게 굳은 채

나를 짓누르며 뒤덮고 있다


몸을 가누기조차 어렵고

꼼짝할 수조차 없는 이곳,

사방이 얼음벽인 듯 차갑다


그렇다고 이대로 멈춰있을 순 없어

가만히 움틀거리며

여기저기 숨 쉴 틈을 더듬어본다


조금씩 틈이 벌어지고

가느다랗게 스며드는 한 줄기 빛.

그 빛을 향해 나는 온 힘을 다해 나아간다


다소 버겁고 숨이 차올라도,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는 걸 알기에

다시 한번 힘을 내어본다


마침내 얼었던 대지가 녹아 물길을 내어주고,

그 틈새를 가르고 세상 밖으로 나와

따스한 봄의 햇살을 마주한다




36년의 거목을 내려놓고, 다시 한 알의 씨앗으로



"겨울을 이겨낸 단단한 껍질을 깨는 것은 밖에서 내리친 망치가 아니라, 안에서부터 차오른 생명이 밀어 올린 연약한 초록의 힘이다."


저는 지금 새로운 삶을 향한 도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군대라는 한 분야에서 36년을 살아왔으니, 사실 이 세계 안에서는 눈 감고도 반응할 수 있을 만큼의 전문가입니다.

하지만 곧 마주할 저의 '인생 후반전'도 과연 그럴까요?


지금까지 제가 속해 있던 곳은, 제 자신이 조금 부족해도 곁에서 끌어주고 밀어주는 공동체 의식이 강한 집단이었습니다.

유사시에는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서로를 구해야 하는 끈끈한 전우애가 있었죠.

무엇보다 지휘 체계가 명확하여 지시대로 움직이면 되는, 다소 폐쇄적이지만 안전한 온실이기도 했습니다.


안정적인 군복의 품 안에 있었기에 개인의 브랜딩보다는 주어진 업무의 숙련도에만 집중하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익숙한 궤도를 벗어나 사회에 첫발을 내디뎌야 합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일과 유사한 길을 갈 것인지, 아니면 완전히 다른 직군으로 뛰어들 것인지, 2~3가지의 선택지를 두고 깊은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 지금 계속 쓰고 있는 자작시를 전업으로 삼기에는 현실적인 무리가 따릅니다.

아직 저를 브랜딩 할 만한 궤도에 오르지도 못했기에, 결국은 일반적인 직장인의 삶을 다시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사회라는 낯선 생태계와 업무 방식은 저에게 큰 두려움이자 걱정으로 다가옵니다.


마음속으로는 이미 땅 위로 올라온 늠름한 새싹이라 여기고 싶지만, 현실의 저는 아직 꽁꽁 언 대지 속에 파묻힌 작은 씨앗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아직 흙이 덜 녹아 세상을 향해 껍질을 깨고 나가기가 버거운 상태 말입니다.

인생 후반전을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고 자부해 왔지만, 어쩌면 당장의 절박함이 부족했던 저의 자만이 깃들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부터, 언 땅을 뚫고 나갈 싹을 틔우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려 합니다.

지금까지의 익숙했던 생활 패턴과 군인으로서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후반전 적응을 위한 현실적인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올 한 해, 마음의 위안이 되는 시 쓰기는 꾸준히 이어가되, 새로운 밥벌이를 위한 자격증 획득과 보수교육도 철저히 받을 계획입니다.

그리고 실제 업무를 바닥부터 배울 수 있는 환경을 찾아 기꺼이 고개를 숙일 것입니다.


36년 전, 빡빡머리로 훈련소에 처음 입대할 때 느꼈던 그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새내기의 심정입니다.

하지만 잘 해낼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다 자란 나무의 자리를 내려놓고 다시 작은 씨앗이 되었지만, 제 안에는 36년간 켜켜이 쌓아온 '견뎌내는 힘'이 있으니까요.

너무 급하지 않게, 그러나 결코 멈추지 않고 저만의 속도로 찬찬히 싹을 틔워 내겠습니다.



가장 위대한 도약은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것이 아니라, 가장 낮은 흙바닥에서 처음 껍질을 깨고 나오는 일이다.



《양희은 - 상록수》

https://youtu.be/dXKw26jA0no?si=trg5lQ-wrlDbuR6Z


[Gemini 활용 이미지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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