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밀(靜謐) : 고요하고 편안함 / 정적이 흐를 정도로 아주 잠잠함
저녁의 소리들
드르르럭, 위이이잉.
저녁의 고요를 가르며
윗집에서 내려오는 소리.
전동 안마기일까,
이 하루를 풀어내는 기계의 숨일까.
잠잠하던 집 안의 정적이
그 소리에 금이 간다.
어쩌면 나는
그 고요가 싫었던 건지도 모른다.
누군가 먼저 깨워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불을 켜고,
물을 틀고,
냄비를 올린다.
물 흐르는 소리,
국이 끓어오르는 소리,
전자레인지가 돌아가는 소리,
티브이에서 흘러나오는 낮은 숨결.
그렇게 하나둘 모여든 소리들이
나의 공간을 채우고
조용히 어우러져
또 다른 시간을 준비한다.
작은 소음이 멈춘 뒤,
비로소 찾아오는
나만의 시간.
처음보다 더 깊이
집중할 수 있는
고요.
젊은 시절, 저는 무언가에 집중할 때면 늘 소음을 찾았습니다.
학창 시절 늦은 밤까지 공부를 할 때도 책상 위엔 항상 라디오가 켜져 있었죠.
디제이의 나직한 목소리와 음악이 흘러야 마음이 놓였습니다.
가끔 마음에 드는 노래가 나오면 녹음 버튼을 누르며 밤을 지새우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그 시절의 저는 적막이 주는 외로움, 텅 빈 공간에 혼자 남겨진 듯한 그 느낌이 두려워 끊임없이 소리를 곁에 두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제게 '절대적인 고요'를 가르쳐 준 곳은 역설적이게도 군대였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야간 경계근무를 서거나 침투 훈련을 할 때면, 스스로의 숨소리조차 죽여야 했습니다.
비록 훈련 중 번번이 방어에 실패했다는 핀잔을 듣기도 했지만, 그 숨 막히는 정적 속에서 귓가를 때리던 풀벌레와 귀뚜라미의 선명한 울음소리는 아직도 생생합니다.
불빛 하나 없는 어둠에 눈을 적응시키고, 발소리를 지우며 걷는 법.
군인으로서 적과 조우했을 때 살아남기 위한 본능적인 생존법이 바로 모든 감각을 열어두는 '정밀(靜謐)'의 순간이었습니다.
소리가 사라진 자리에 생존을 위한 가장 치열한 집중이 자리한다는 것을 저는 그렇게 몸으로 배웠습니다.
세월이 흘러 36년의 긴 복무를 마무리하는 지금, 저는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고요함을 온전히 즐기게 되었습니다.
글을 쓰는 시간이면 오롯이 내면에 집중하기 위해 주변의 모든 소음을 차단합니다.
그릇을 비워야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듯, 저를 둘러싼 외부의 소란을 비워내야 비로소 새로운 생각과 문장들이 그 자리를 채운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의 저에게 완벽한 정밀의 순간은 쉽게 허락되지 않습니다.
오랜 세월 끝에 훈장처럼 남은 이명(耳鳴)이 귀에서 끊임없이 맴돌고 있기 때문입니다.
외부의 소음을 다 끄고 나면, 오히려 내면의 소음이 그 자리를 대신하곤 하죠.
그래서일까요.
이 귓가의 맴돎조차 아스라이 멀어지고 완전한 침묵 속에 잠기는, 그 깊고 온전한 정밀의 순간이 요즘은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합니다.
오늘 밤도 저는 이 적막 속에서, 소음이 비워진 자리에 찾아올 충만한 문장들을 조용히 기다려봅니다.
고요함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빛과 소리를 품기 위해 잠시 자신을 비워낸 충만한 상태이다.
《이영훈 - 일종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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