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해설 활동가와 함께 떠나는 조선시대 경복궁 알기
궁궐(宮闕).
서울에 몇 개의 궁궐이 있는 것은 지나가다 봐서 대략 알고는 있다. 하지만 자세히 설명해 보라고 하면 부담이 먼저 앞선다. 안내판을 보면 그 말이 그 말 같고, 설명도 어렵다. 왠지 모르게 연도는 다 외워야 할 것 같고, 역사 속 등장인물은 또 어찌나 많은지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국사시간에 좀 더 열심히 들을 걸... 이런 뒤늦은 후회가 밀려온다. ‘엄마, 이게 뭐야’라고 아이가 물어볼까 봐 걱정도 된다.
하지만 생각하기 나름이 아닐까? ‘역사공부’라기보다는 ‘즐긴다’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이번에는 조선시대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거야’ 이렇게 말이다.
# 설레는 마음을 안고 역사 속으로!
‘두근두근’
아직도 경복궁 앞에 서면 첫 데이트를 하러 나가는 것처럼 늘 설렌다. 이제는 그 마음이 덜할 법도 한데, 시간이 갈수록 그 떨림과 설렘은 오히려 커진다. 옷매무새도 한 번 정리하고, 목소리도 가다듬고, 조선시대 왕을 만나러 가는 것처럼 내 모습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엄마!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아요!”
유치원생이던 아주 오래전, 부모님과 함께 경복궁에 갔을 때 내가 했던 말이다. 넓은 조정에서 근정전을 마주하고 있는데 시간이 멈추고 마치 내가 영화 속 한 장면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근정전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느낌이랄까.
나는 한국의 궁궐과 역사를 설명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벌써 20년이 넘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유적지에 가거나 유물들을 볼 때면 왠지 모르게 가슴이 뛰고 전율이 흘렀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았지만, 관련된 일화나 구체적인 설명이 더해질 때면 그 매력은 배가 되었다. 그래서 시작하게 된 문화유산해설! 20년이면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하고 내 나이의 숫자 앞자리도 여러 번 바뀐 것이기에 그만큼 쌓인 추억들도 많다.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가 20년 만에 고국을 찾은 한 아저씨는 내 첫 안내를 듣고 난 후 감동을 받았다며 수십 장의 사진을 찍어 보내주시기도 했고, 또 어떤 커플은 안내가 재미있다며 한여름에도 서로 손을 꼭 잡고 몇 시간에 걸쳐 함께했다. 처음에는 들을까 말까 고민하던 초등학생들이 마지막에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가장 열심히 대답하는 열혈 관람객이 되기도 했다. 저 멀리 사할린에서 고국을 찾은 동포들에게 한국의 역사를 알리고, 중국과 일본에서 온 외국인 친구들에게는 왜곡된 역사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값진 기회도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처음이자, 또 누군가에게는 오래전 사진을 꺼내보는 듯한 추억의 장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다시 찾기 어려울 마음속 그리움의 장소가 될 경복궁. 그들의 소중한 순간에 함께할 수 있었다는 것은 내게도 큰 행운이자 보람이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한 번쯤은 경복궁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서울 한복판에 장엄하게 자리 잡은 경복궁! 광화문과 흥례문, 근정문을 지나 근정전에 다다르면 복잡한 도심의 소음이 거짓말처럼 사그라든다. 북쪽에 있는 북악산, 좌우에 있는 인왕산과 타락산을 바라보고 있으면 고즈넉함도 느껴진다. 이뿐만이 아니다. 경복궁 안에 들어서면 곳곳에 숨겨진 조상들의 재치와 해학을 발견할 수 있다. 심지어 우리나라 최초의 전기발상지이기도 하고, 안타까운 역사지만 명성황후가 시해된 비운의 사건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경복궁은 이렇게나 사연이 많은 곳이다.
사실 ‘궁궐’, ‘역사’라고 하면 왠지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넘치는 매력을 가지고 있는 경복궁을 나만 알고 있기에는 아쉬움이 남았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공간이지만, 궁궐은 몇 백 년 전 수천 명의 사람들이 치열한 삶을 살았던 곳이고, 국정의 중심이었으며, 기쁨과 슬픔, 고난과 행복이 공존했던 곳이다. 그렇기에 늘 나는 궁궐 안내를 시작하기 전 이렇게 말한다.
“잠시 눈을 감고 상상력을 발휘해 주세요. 지금의 모습이 아닌 사람들이 북적이며 생생하게 살아있던 삶의 공간, 그 시대의 궁궐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너무도 유명한 그 말,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처럼, 궁궐에 대해 연구하고 답사하면서 매번 궁궐은 내게 새롭게 다가온다. 예전에는 단순히 주말여행 또는 소풍의 목적지로 경복궁을 추억했다면 이제는 역사의 흔적이 곳곳에 담긴 있는 문화적 공간으로서의 경복궁을 떠올리게 된다. 어느 순간부터 역사공부를 한다는 느낌보다는, 자연스럽게 ‘스며든다’는 느낌으로 사람들에게 궁궐이 주는 감동과 아름다움, 그 역사적 가치를 정확한 해설과 함께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경복궁에 가면 어떤 동선으로 다니면 좋고, 어떤 것을 중심으로 보면 좀 더 알차게 궁궐을 느낄 수 있는지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아직은 내가 부족하지만 큰 마음을 먹고 사람들에게 조금씩 조금씩 그 가치를 전하는 일을 글을 통해 해보고 싶다는 결심이 생겼다.
이 글은 그 여정의 시작이다. 단 몇 명이라도 경복궁의 가치와 매력을 알고 마음으로 그 감동을 느낄 수 있다면 내게는 더없는 행복이자 보람일 것이다. 많은 것은 필요 없다. 단지 함께하고자 하는 가벼운 마음만이 필요할 뿐! 자, 이제 설레는 마음을 안고 아름다움을 찾는 시간여행을 함께 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