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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의 상징, 궁궐을 만나다

- 경복궁에 들어서며...

by Twinkle

“조선시대의 수도 한양의 중심, 경복궁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해설을 시작하기 전, 제가 늘 관람객분들에게 하는 첫인사입니다. 누구나 ‘처음’이 주는 느낌은 강렬하죠. 조선시대로 떠나는 시간여행을 하기 전, 설렘으로 시작하는 그 마음, 그 첫 느낌을 오랫동안 간직하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늘 이렇게 말씀드리곤 합니다.


오늘도 해설이 시작되기 전, 벌써부터 삼삼오오 많은 분들이 안내판 앞에서 저를 기다리고 계시네요. 곱게 한복을 입으신 분도 있고, 몇 시간의 안내를 각오하신 듯 하이킹 복장으로 든든하게 입고 오신 분도 눈에 띕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더우나 추우나 이렇게 경복궁을 둘러보기 위해 함께해 주신 분들을 볼 때면 저도 ‘더 알차게, 경복궁의 매력을 전해드려야지!’ 하는 열정이 다시 샘솟곤 합니다.


자, 이제 경복궁 여행을 하기 위해 모두가 안내판 앞에 모였습니다. 본격적인 경복궁 산책을 시작하기 전, 맞은편 관람객에게 질문을 합니다.


“조선시대의 수도는 어디죠?”


모두 이구동성으로 자신 있게 대답합니다.


“서울이요!! 옛날에는 한양, 한성이라고도 불렸대요!”


맞습니다.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죠. 그럼 다음 질문 나갑니다.


“그럼, 서울에는 궁궐이 몇 개가 있을까요?”


물론 자신 있게 정답을 외치는 분들도 있지만, 머뭇거리는 분들도 있습니다. 혹시 정답을 알고 계신가요? 바로 5개입니다.


조선시대의 수도였던 한양에는 5개의 궁궐이 있었습니다. 1392년 조선이 창건된 후 1395년 가장 먼저 만들어진 조선시대의 상징이자 법궁인 경복궁, 많은 왕들이 사랑했고 그 우수성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창덕궁, 경복궁의 동쪽에 있어 창덕궁과 함께 ‘동궐’이라고 불린 창경궁, 대한제국 시기 황궁으로 거듭났던 덕수궁(원래의 이름은 경운궁이니, 우리는 앞으로 경운궁이라고 합니다), 경복궁 서쪽에 자리 잡아 ‘서궐’이라고 불렸던 서울역사박물관 근처의 경희궁까지.


그런데, 궁궐이 왜 5개나 필요했나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나면 충분하지 않냐고 많이들 물어보시거든요. 실제로 이 궁궐들은 모두 동시대에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5개의 궁궐 가운데 조선시대 첫 궁궐은 바로 경복궁이었습니다. 가장 중심이 되는 궁궐이자 중요한 의미가 있어 우리는 흔히 경복궁을 ‘법궁(法宮)’이라고 부르죠.


조선시대의 건물들은 주로 나무로 만들었습니다. 나무로 만든 건물에 가장 위협적인 것이 바로 화재죠. 예를 들어 왕이 사는 공간에 불이 나거나 전쟁이 일어나거나, 전염병이 도는 등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졌을 때 거취를 옮겨야 하는 일들이 생기는데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왕이 머물 수 있는 또 다른 궁궐을 만든 겁니다. 첫 궁궐이었던 법궁인 경복궁 이외에 나머지 궁궐들은 그런 여러 가지 필요에 따라 만들어지게 된 거죠. 실제로 경복궁은 1592년 임진왜란 때 불타서 대부분의 전각이 없어졌는데요. 고종이 경복궁을 중건하기까지 약 270년 동안 경복궁은 폐허로 남아있었습니다.


그럼 그동안 왕은 어디에 살았을까요? 임진왜란 당시 왕이었던 선조는 임시로 경운궁에 머물렀고요. 창덕궁 같은 경우는 태종 때 지었지만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면서 광해군 때 다시 지었습니다. 그래서 창덕궁 같은 경우에는 경복궁이 중건되기 전까지 법궁의 역할을 하기도 했죠. 창경궁은 성종이 대비들을 위해 수강궁을 고쳐 창경궁이라고 이름 지으면서 존재감이 더욱 커졌고요. 경희궁 같은 경우는 광해군 때 지어졌지만 일제 강점기에 많이 훼손된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고 나서 질문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다른 궁궐도 있는 것 같다고요. 쉽게 설명해 드리면, 우리가 많이 들어본 ‘행궁’은 왕이 임시로 잠시 머무는 곳이고요. ‘별궁’은 궁궐 밖에서 태어난 왕이 즉위하기 전에 살던 곳을 가리킵니다. 대표적으로 고종이 살던 ‘운현궁’이 있죠.


여기서 한 가지 더 짚어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궁궐은 한자로, 집 궁(宮), 대궐 궐(闕)이라고 씁니다. 한 마디로 궁은 임금의 거처를 의미하고, 궐은 궁을 지키는 담장이나 출입문 좌우에 설치된 망루 등을 의미하죠, 경복궁도 궁궐이기 때문에 당연히 궁궐 담장의 양 끝에 궁 내외를 감시할 수 있는 동십자각과 서십자각을 만들었습니다.

동십자각(수정).jpg
서십자각터.jpg <길가에 홀로 떨어져 있는 동십자각(위)과 서십자각터 안내판(아래)>


경복궁 오는 길에 보신 것 같다고요? 네 맞습니다. 경복궁 동쪽, 길 건너 자리 잡은 동십자각을 지나가면서 많이 보셨을 텐데요. 원래는 경복궁과 담장으로 이어져 있어야 하는 동십자각은 일제 강점기 때 담장과 계단 등을 허물면서 경복궁과 떨어진 모습으로 홀로 외롭게 서 있습니다.


그럼 서십자각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안타깝게도 서십자각은 일제강점기 때 전차선로가 개통되면서 헐렸다고 전해지는데요. 서십자각 자리로 추정되는 곳에는 ‘서십자각터’라는 안내문만 남아있습니다.


자, 이렇게 큰 틀에서 경복궁을 보고 다시 안내판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경복궁 전각들이 눈에 띕니다.


‘조선시대의 최고 궁궐이었다는데 생각보다 건물이 별로 없네요?’


이렇게 질문하셨던 관람객분이 떠오릅니다.


경복궁의 과거 모습을 이야기할 때 제일 많이 예로 드는 것이 바로 1900년대 초에 제작된 북궐도형인데요. 지금의 모습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전각들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경복궁은 1990년대부터 복원사업이 진행되고 있는데요. 2045년까지 계속 이어질 예정이라고 하네요. 아직 복원할 전각들이 많은 만큼, 본격적인 궁궐 답사 전에 치열한 삶의 공간이자, 지금보다 더 많은 전각들이 들어차있는 궁궐의 모습을 상상해 보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요?

1편 경복궁 조감도.jpg <경복궁 안내판에 설명된 장기 복원-정비 조감도 및 현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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