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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 내 푸른 잔디, 그 정체는?

- 왕을 도와 조선을 이끌던 궐내각사는 어디에...

by Twinkle

* 전편 둘러보기 : 조선의 싱크탱크... 수정전


수정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옆쪽을 보니, 쫙 펼쳐진 넓은 잔디밭이 보이네요.

궐내각사.jpg <수정전 옆, 바로 보이는 넓은 잔디밭>

그럼 여기서 질문 나갑니다. 주관식은 어려울 수 있으니 객관식으로 준비했어요!


Q) 여기에 왜 이렇게 잔디가 많은 걸까요?


A)

1. 날씨가 좋으니 맛있는 음식들을 가져와 즐겁게 피크닉을 하라고

2. 궁궐 내에는 행사가 많으니 행사를 하려고 잔디를 심었다

3. 궁궐 내에 건물 대신 잔디? 예전에 뭔가 있었던 자리가 아니었을지...


여러분, 정답은 무엇일까요? 센스 있게 눈치챈 분들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정답은 3번입니다.


궁궐에서 후원이 아닌 이상, 이렇게 잔디밭이 있는 경우는 건물들의 무덤이라도 보면 되는데요. 원래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사람이 사는 공간 내에 잔디를 심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고 합니다. 잔디를 마음껏 심을 수 있는 곳이 있긴 있죠. 바로 무덤입니다.


수정전 옆 잔디밭은 바로 궐내각사가 있던 자리인데요. 조선시대에는 조선이라는 나라가 발전하는데 역할을 한 관청들이 많았습니다. 현재의 우리나라도 예를 들어 외교부, 국방부, 교육부 등등 다양한 부서들이 있는데,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조선시대에도 왕 아래로 많은 관청이 있었죠.




조선의 중앙 정치 조직국정을 총괄하는 의정부, 그리고 그 아래에서 왕의 명령을 집행하는 6조를 중심으로 편성되었습니다. 6조(이·호·예·병·형·공)는 정책을 집행하는 데 있어 실질적인 일을 담당하였는데요. 이조는 문관의 임명과 승진, 호조는 국세파악과 세금 징수, 예조는 교육 및 과거시험, 외교와 제사를 담당했고요. 병조는 국방과 역참, 무관 인사, 형조는 형법과 소송, 공조는 산림 및 건설, 수공업과 관련한 업무를 맡았다고 합니다.


궁궐 밖에 있는 관청들은 궐외각사(闕外各司)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광화문 밖 6조 거리에 자리 잡고 있었고, 지금의 세종문화회관 등이 있는 세종로에 의정부, 사헌부, 한성부, 6조 등이 있었습니다.


왕은 특별한 일이 아닌 한 궁궐을 벗어나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대신 관료들이 궁궐로 들어와서 왕에게 여러 가지 상황을 보고하고 정사를 논의했죠. 왕과 긴밀하게 소통해야 하는 관청들은 궁궐 안에 있었습니다. 이런 관청들을 가리켜 궐내각사(闕內各司)라고 하죠.


왕의 비서실이라고 할 수 있는 승정원, 왕의 자문역할을 하면서 궁궐의 문서를 작성하고 관리하던 홍문관 등이 바로 궐내각사들입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드리면, 승정원 같은 경우는 교과서에서 왕명의 출납을 담당한 관청이라고 배웠던 기억 나시죠? 정원, 후원, 은대 등으로 불렸고, 우리가 사극에서 많이 보았던 도승지 좌우승지 등 6명의 승지를 두었다고 합니다. 승정원에서 매일매일 취급한 문서와 사건을 기록한 것이 바로 승정원일기인데요. 그 가치와 의미를 인정받아서 유네스코 기록유산에 등재되기도 했습니다.


홍문관은 왕의 자문을 담당하는 관청으로 경연을 주관하고 경서 관리했고요. 옥당이라고 불리도 했죠. 그 외에도 예문관은 외교문서를 만드는 곳이었고, 춘추관은 실록을 편찬하는 등 역사를 기록하는 일을 담당했습니다. 왕실 가족들의 건강을 담당하는 내의원 등도 궁궐 안에 있었죠.




여러분, 그럼 궐내각사에 일했던 관리들은 경복궁에 있는 동서남북의 문 중 주로 어느 문을 통해 다녔을까요?

혹시 예전에 고등학교 시간에 배웠던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을 기억하실까요? 한때 국어시간에 관동별곡을 외우는 과제 덕분에, 저는 지금도 이 구절을 기억합니다.


“연추문(영추문) 드리다라 경회남문 바라보며 하직하고 물러나니....”


네, 이제 눈치채셨죠?

영추문 외곽.jpg <관리들의 출입문으로 주로 이용되었던 영추문>

영추문(迎秋門)은 조선시대 문무백관이 주로 출입한 문으로, 연추문(延秋門)이라고도 하는데요.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경복궁이 중건되면서 다시 지어졌는데요. 안타깝게도 1926년 전차 노선을 만들면서 석축이 무너져내려 철거하게 되었고, 1975년에 다시 세웠습니다. 한동안 통제되다가, 복원 이후 43년 만에 최초로 2018년, 전면 개방되었죠. 당시 이슈가 되어 많은 언론에서도 기사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추가로 말씀드리면, 궁궐에서는 동서남북 방향이 매우 중요하다고 했었죠. 경복궁의 남쪽에 위치한 것이 바로 정문이자 남문인 광화문이고요. 동쪽에 있는 문이 건춘문, 서쪽에는 영추문, 북쪽에는 몇 년 전 개방되어 청와대로 이어지는 신무문이 있죠. 당연히 궁궐 문의 이름도 모두 의미가 남다릅니다. 영추문의 경우, 서쪽은 계절로 따지면 가을, 결실을 맺는 느낌이고, 서쪽의 수호신은 백호죠. 그래서 이름에 가을 추(秋)가 들어가고, 천장에는 백호가 그려져 있으니, 영추문을 지나가는 분은 꼭 한 번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영추문 백호.jpg <영추문을 지나가다 위를 바라보면 확인할 수 있는 백호>




소중한 문화유산, 우리 손으로 더 아끼고 사랑해야죠!


사실 영추문 하면 잊을 수 없는 안타까운 사건이 있습니다. 2023년 12월 경복궁 담장에 스프레이를 뿌려 낙서를 한 사건이 있었는데요. 당시 정말 많은 국민들이 분노했고 마음 아파했습니다. 2013년에도 한 사람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국보였던 숭례문이 불탄 적이 있었죠. 이를 계기로 2월 10일은 ‘문화재 방재의 날’이 되기도 했습니다.


영추문 낙서(뉴스1).jpg <영추문 낙서, 절대로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해서는 안 되겠죠!, 출처:뉴스1>


많은 관계자들의 노력과 헌신으로 영추문 담장의 낙서는 어느 정도 지워졌지만, 우리 마음에 남은 상처와 안타까움이 한동안 계속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소중한 유산들은 우리 스스로가 그 가치를 인정하고 아끼고 보존할 때 더 빛이난다는 것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자, 지금까지 궐내각사와 영추문에 대해 살펴봤는데요. 영추문을 바라보면 경복궁에 입궐하여 열심히 일하는 관리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시니 어떠신가요? 궁궐도 사람 사는 곳이었기에, 뭐랄까요... 출퇴근하고 열심히 일하는 현재의 우리 모습과 오버랩이 된달까요?


그럼, 이제 저희는 경복궁에서 너무나도 유명한 그곳, 경회루로 발걸음을 옮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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