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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늑한 후원으로... 향원정과 취향교

- 향원정과 취향교에 얽힌 이야기

by Twinkle

* 전편 돌아보기 : 대왕대비의 공간, 자경전


자경전을 뒤로하고 북쪽으로 가면, 드디어 경복궁 후원이 나옵니다. 지금은 공사 중이라 좀 복잡하기는 하지만, 울창한 나무와 다양한 꽃들 사이로 난 길을 따라가면 눈앞에 보이는 풍경에 많은 분들이 ‘와!’하고 감탄하합니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이 바로 향원정(香遠亭)과 취향교(醉香橋)입니다.


연못 가운데 작은 섬이 있고 그 안에 정자가 보입니다. 그리고 정자에서 북쪽으로 다리가 있죠. 후원이라 그런지 뭔가 아늑하고 조용한 느낌입니다. 후원 왕과 왕비의 휴식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고종은 명성황후와 함께 뒤에서 소개해드릴 건청궁이라는 곳에 머물면서, 취향교라는 다리를 만들어 휴식을 취했다고 하죠.

원래 조선 전기에는 향원지라는 연못과 취로정이라는 작은 정자 정도만 있었는데, 고종 때 경복궁 북쪽 지역에 건청궁을 지으면서 지금과 비슷한 모습이 되었다고 합니다.

향원정.jpg <한 폭의 그림 같은 향원정과 취향교>

향원정은 ‘향기는 멀리 갈수록 진해진다’라는 의미를, 취향교는 ‘향기에 취하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이 연못에 연꽃이 가득했다고 하죠. 잘 보시면 향원정은 섬 위에 있는데요. 연못의 모양은 네모이고, 섬은 동그란 모양입니다. 동양의 사상 중 천원지방과도 관련이 있죠. 앞서 경회루의 기둥 모양을 이야기할 때 천원지방에 대해 말씀드린 적이 있었죠?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라는 천원지방 사상이 바로 이곳에도 적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취향교는 무지개 모양의 하얀색 다리로 만들어졌었는데요. 6.25 전쟁 때 안타깝게도 파괴가 되었죠. 그러다가 1953년에 복원하였는데 그때 관람객들이 남쪽에서부터 올라오다 보니 향원정 남쪽에 만들어지게 됩니다. 원래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죠. 그러다 보수공사를 거친 뒤, 취향교는 원래의 자리이자, 지금 여러분들께서 보고 계신 자리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유독 하얀 취향교를 보신 관람객분들은 새로 만들었다는 것을 금세 알아채시더라고요.




향원정 이야기를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열상진원(洌上眞源)입니다.

향원정을 둘러싸고 있는 연못을 따라가다 보면 북서쪽 모서리 끝쪽에 ‘열상진원’이라고 적혀 있는 글씨와 함께 샘 같은 것을 보실 수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관람객들이 향원정 앞부분만 보고 다시 내려가시는 경우가 많은데, 뒤쪽에도 많은 것들이 있으니 꼭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전에서 ‘열상진원’의 의미를 찾아보니 ‘진짜 차고 맑은 물의 근원’이라고 정의하고 있는데요. 실제로도 물이 참 맑습니다. 사실 이 샘은 인공적으로 만든 것인데요. 여기에 놀랍게도 과학적인 원리가 숨어 있습니다. 이곳의 물든 북악산에서부터 흘러내려오는데요. 산에서 내려온 물인 만큼 매우 차갑겠죠? 그런데 이 찬물이 바로 향원지로 들어가지 않고 열상진원에서 돌면서 잠시 고여있다가 조금씩 조금씩 연못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물은 아주 차갑지 않고 좀 더 따뜻해지게 되죠. 그래서일까요? 이곳에 있는 물고기들도 새롭게 유입된 물 때문에 놀라거나 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경복궁 열상진원jpg.jpg <경복궁의 열상진원, 경복궁 내에는 신기한 게 참 많죠?>

여러분께서는 혹시 우리나라 최초의 전기 발상지가 어디인지 알고 계신가요?


바로 경복궁입니다.


최초의 전기발상지.jpg <향원정 뒤편으로 가시면 이런 비석을 안내석을 보실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전기를 발명한 사람이 누군지 알고 계시죠?


바로 에디슨입니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한 지 8년 정도 되었을 때, 에디슨이 만든 회사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발전 시설을 이곳에 만들었고, 여기서 발전기를 돌려 얻은 전기로 건청궁을 밝혔다고 하는데요. 중국이나 일본보다 빨라서 동아시아 최초의 전기발상지가 되기도 했죠. 바로 1887년의 일입니다.


그보다 몇 년 전, 미국을 방문했던 조선 사절단 보빙사 일행이 에디슨의 전구 회사 방문한 것이 계기가 되었는데요. 고종이 집권하던 당시 조선은 선진문물을 받아들이는 것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영선사, 수신사, 보빙사 등이었는데요. 아마 국사시간에 배워서 익숙한 이름일 겁니다.


영선사는 신식 무기 제조법과 군사훈련법을 배우기 위해 청에 파견된 유학생을 인솔한 사절단인데요. 영선사 일행은 귀국 후 조선 최초의 근대 무기 제조공장인 기기창 설립을 추진하기도 했죠. 수신사는 강화도 조약 체결 이후 일본으로 파견된 외교 사절단으로, 1차에는 김기수, 2차에는 김홍집이 파견되어 일본의 근대화 시설을 시찰했습니다. 그리고 보빙사는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후 1883년 미국에 파견되었는데요. 민영익, 홍영식, 서광범 등으로 구성되었고, 바로 보빙사가 전기를 들여오는 데 일조를 하게 되는 거죠.


고종은 근대화에 관심이 많았다고 하죠. 보빙사를 이끈 민영익의 보고를 받은 고종은 전기 도입에 적극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경복궁이 최초의 전기 발상지가 될 수 있었죠.


시등화.jpg <1887년 경복궁 건청궁의 점등식을 시현한 시등화, 출처 : 한국전력 전기박물관>

경복궁 내에서 이뤄진 최초의 점등에 대해서는 한국전력의 전기박물관에도 관련 내용을 찾을 수 있는데요.

전기박물관에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1887년 3월 6일 저녁, 어스름이 짙게 깔린 경복궁 내 건청궁, 작은 불빛 하나가 깜빡깜빡하는가 싶더니 처음 보는 눈부신 조명이 갑자기 주위를 밝혔습니다. ‘아~!’ 주위에 모여든 남녀노소들이 모두 감탄사를 터트렸습니다. 마침내 우리나라 최초로 전등이 점화된 것입니다. (전기박물관 안내문 중)


당시 향원정 연못가에 세워진 발전설비는 성능이 뛰어난 것이었다고 하는데요. 16 촉광 백열등 750개를 켤 수 있는 규모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전기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향원정 연못에서 물을 얻어 석탄을 연료로 발전기를 돌렸다고 하는데 매우 시끄러웠다고 합니다. 이런 근대 문물에 익숙지 않았던 궁궐 사람들에게 발전기의 소음이나 전구의 불빛으로 인해 잠을 이룰 수 없다고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고요, 발전기에서 나온 뜨거운 물이 향원정 연못으로 들어가 물고기가 배를 내놓고 떼죽음 당하기도 했죠. 비용도 매우 많이 들었고, 전구가 자기 마음대로 불이 들어왔다가 또 나갔다를 반복한다고 해서 ‘도깨비불’‘건달불’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더불어 경복궁 내에서 전기와 관련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장소가 있어서 여러분들께 좀 더 자세히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지난 4월,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가 대한전기협회와 함께 경복궁 안에 ‘영훈당과 등소(燈所·전기 발전소)’ 홍보관을 개관했습니다. 경복궁 영훈당은 일제강점기에 다른 전각들과 함께 사라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영훈당 권역 북쪽에서 전기등소가 확인된 바 있기 때문에 이 홍보관은 더욱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이곳에서는 조선 최초의 전기 점등 역사가 담긴 보고서와 사진 등을 볼 수 있다고 하니 한 번 들러보시는 것도 추천드릴게요.


그런데요. 고종이 전기도입하고 사용한 것에 대해 궁금증을 갖는 분들도 많더라고요. 동아시아 최초로, 그것도 궁궐에서 전기를 사용한 것 등에 대해서요.


이것은 당시의 불안정한 상황과도 관련이 있는데요. 1882년 임오군란, 1884년 갑신정변으로 인해 고종은 여러 가지 면에서 입지가 불안정했죠. 심리적으로도 많이 불안하고 복잡했을 겁니다. 어쩌면 선진문물 수용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건청궁의 전깃불들을 보며 불안한 마음을 조금은 달래려고 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영훈당과 등소.jpg <지난 4월에 문을 연 ‘영훈당과 등소’ 전시관, 출처 : 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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