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이별 그리고 바다라는 자연
바다를 기억하는 아이
1. 파도 소리
아이는 늘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 집은 바닷가에서 가까운 언덕 위에 있었다. 오래된 나무 창틀 사이로 파도 소리가 들려왔고, 밤이 되면 등대 불빛이 조용히 집 안을 스쳐 지나갔다.
할아버지는 매일 아침 바다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오늘 바다는 어떤 기분이려나."
아이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바다는 늘 같은 색이었고, 늘 같은 소리를 냈으니까.
"할아버지, 바다도 기분이 있어요?"
할아버지는 조용히 웃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럼, 바다도 우리처럼 기분이 있어. 기쁜 날은 잔잔하고, 슬픈 날은 거칠어지지."
아이는 할아버지의 말을 이해하려 애썼지만, 바다의 감정을 읽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파도가 유난히 거칠게 몰아치던 밤이었다. 아이는 창가에 앉아 출렁이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할아버지가 조용히 일어나더니 문을 열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왔고, 비린내가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할아버지, 어디 가요?"
할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천천히 바다를 향해 걸어갔다. 아이는 놀라 뛰어나가 할아버지를 붙잡았다.
"할아버지!"
그 순간, 할아버지는 멈춰 서서 아이를 바라보았다.
"나는 바다를 약속했단다."
"무슨 약속?"
할아버지는 눈을 감았다 뜨더니,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래전에, 누군가를 바다에 보냈거든."
아이는 그제야 알았다. 할아버지가 매일 바다를 바라보던 이유를. 바다에 손을 흔들던 이유를.
그날 밤, 아이는 창가에 앉아 할아버지를 기다렸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2. 바다가 가져간 것
할아버지는 어부였다. 아주 오래전, 어린 아버지와 함께 배를 타고 나갔다가 거센 폭풍을 만났다. 할아버지는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아버지는 돌아오지 못했다.
그때부터 할아버지는 매일 바다를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것처럼.
마을 사람들은 말했었다.
"바다는 가져가고 싶은 걸 가져간다."
할아버지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바다를 원망하지 않았다. 다만, 매일 바다에게 인사하며 마음속 이야기를 전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 할아버지는 바다를 향해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3. 남겨진 사람들
아이는 이제 어른이 되었다. 할아버지가 떠난 후에도 여전히 바닷가 언덕 위에서 살아가고 있다.
때때로 바다를 바라보며 속삭인다.
"할아버지, 오늘 바다는 어떤 기분이에요?"
어느 날, 바다가 유난히 잔잔한 날이었다. 아이는 그날이 왠지 따뜻하게 느껴졌다. 바다가 대답하는 것만 같았다.
"오늘은 좋은 날이야."
아이는 조용히 바다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