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좋아하는 건

그냥 좋은 걸 찾아서, 좋은 기억을 많이 쌓는 거. 그게 다야

by 하빈
나 뭐 좋아하지


어쩌면 시리즈를 연재하면서 매주 나의 가장 큰 고민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오르막길을 오르며 나는 매일 고민했다. 하늘을 보는 것도 좋아. 푸르른 세상도 좋고 산들거리는 바람도 좋아. 그래도 이건 애매한데. 헉헉. 퇴근길이 평지인 곳에 살면 더 좋을 것 같아... 그런데는 비싸려나... 이런 식으로 내 고민은 늘 나풀나풀 바람에 홀려 다른 곳으로 가버리곤 했지만, 연재에 대한 압박으로 글감이 될 만큼의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매주 기어코 찾아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시리즈를 다 쓰면 나는 부자가 되어 있을 줄 알았다. 내가 열정을 쏟을 수 있는 걸 찾을 줄 알았다. 그리고, 좋아하는 걸 찾으면 성공한다고 하잖아? 성공하는 건 부자가 되는 거잖아? 푸흐흐. 뭐, 부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주 뜨거울 줄 알았다. 눈이 반짝거리는 사람이 될 줄 알았다. 그렇게 되었을까? 글쎄, 여전히 난 동태눈깔로 커피를 쪼르륵 마실 뿐이다.


좋아하는 것을 고민하는 시간 동안 알게 된 것이 있다면, 먼저,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은 나의 취향과 선호에 포함되지 않았다. 다른 인플루언서들처럼 거창하고, 멋있는 것들? 안 해봐서 모르겠다. 그러니까 내가 캠핑을, 스쿠버다이빙을, 스노 보드를 좋아하는지는 모르겠다. 너무 당연한 건데, 나는 이걸 몇 개의 글을 쓰고 나서야 깨달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나의 경험의 폭 안에서 제한된다. 좋아하는 것을 찾기 시작한다고 해서, 내가 해보지 않았지만 막연히 멋지고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인형옷 만들기를 갑자기 좋아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이라는 제목을 쓸 때는, 내가 미처 몰랐던 내가 좋아하는, 팔딱거리는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글을 쓰면서 '어쩌면 그거!?' 하며 내가 좋아하는 것을 보이지 않는 땅 속에서 발견하게 될 줄 알았다. 근데, 막상 좋아하는 게 뭔지 고민하는 일은 이미 내가 그동안 살아오며 파낸 돌들을 가만히 앉아 관찰하는 일이었다. 이 돌을 파낼 때 어땠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을 꽤나 좋아하고 사랑했다. 이불속에서 느지막이 발을 꼼지락거리며 뒹굴거리는 주말을 참 좋아한다. 뒷짐을 지고 푸르른 공원을 산책하는 시간을, 그리고 공원을 산책하는 다른 강아지들을 엿보는 시간을 참 좋아한다. 책을 들고 노을이 보이는 카페에서 서성이는 시간을, 오늘은 어떤 차를 내릴까 고민하며 차가 우러나는 장면을 보는 순간을 좋아한다. 오늘의 코디에 어울리는 양말을 골라 신고, 시장에 나가 제철 과일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어떻게 하면 성공하는지,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어떻게 하면 기분을 전환하고 빠르게 행복해질 수 있는지는 알게 되었다. 아-! 나는 좋아한다를 내가 그것과 함께하는 시간이 행복한가로 정의하는 사람이다.

좋아하다.
[1] 어떤 일이나 사물 따위에 대하여 좋은 느낌을 가지다.
[3] 특정한 운동이나 놀이, 행동 따위를 즐겁게 하거나 하고 싶어 하다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세상에, 이미 좋아한다의 정의가 그러했다. 나 그동안 뭐 한 거지? 그러니까, 팔딱거리는 무언가를 찾았더라도 그 일을 하며 평생을 살게 된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좋은 기억뿐만 아니라 그것과 관련된 나쁜 기억도 쌓일 것이고, 좋은 기억보다 나쁜 기억이 많아진다면 나는 더 이상 그것을 좋아하지 않게 될 것이다. 좋아하는 걸 찾는 게 능사가 아니었어. 그냥 취향인 걸로 시작해서, 관련된 좋은 기억을 많이 쌓으면 되는 거였다. 나만이 좋아하는 것을 찾는다는 것은, 나랑 퍼즐처럼 딱 맞는 대상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냥 관련된 좋은 기억을 많이 쌓고, 좋은 부분을 더 많이 누리는 것. 왜 이제 알았지? 당연하잖아?


이상으로, 어쩌면 시리즈를 마치겠습니다.

당연한 얘기를 하려고 이렇게 오래 걸렸나 봅니다. 그래도 저는 의문이 하나 풀려서 아주 개운합니다. 전 정말 오랜 시간 동안 좋아하는 것, 어떤 역경이 와도 이겨낼 수 있을 만큼 좋아하는 완벽한 그 대상을 찾아 헤맸거든요. 이 시리즈도 저에겐 그 몸부림의 일환이었습니다. 저는 늘 새로운 걸 도전하고 누구보다 빠르게 단념하고 다른 걸 찾아 나서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추진력이 좋은 저를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저는 몇 년 동안 한 가지를 꾸준히 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늘 부러웠어요. 이제와 보니 그 이유를 알겠네요. 저는 집 밖의 파랑새를 찾아다니는 사람이었습니다. 환상의 파랑새는 집에 있었네요. 좋아하는 것을 찾는 일은 그저 좋은 기억과 좋은 추억을 많이 쌓으면 되는 거였어요. 앞으로는 환상의 파랑새를 찾지 말고, 그냥 제 감정과 좋은 느낌에 집중해 보려고요. 이런 일들도 에세이로 남겨보겠습니다. 첫 브런치를 연재하며, 저는 꽤나 행복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글을 읽는 시간들도 여러분들에게 행복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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