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난류

무질서하고 비정상성을 가지는 유체 운동

by 하빈

난류, Turbulence

무질서하고 비정상성을 가지는 유체 운동


잘 알지도 못하는 과학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냥 단지 난류를 바라보는 것을 참 좋아한다. 이 단어 말고 기체와 액체의 소용돌이를 표현할 말을 못 찾았을 뿐.


인센스 스틱을 태울 때, 연기가 위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 처음엔 일직선으로 곧게 가는 가 싶더니 금세 이리저리 소용돌이치며 예상할 수 없는 움직임을 만들어 낸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보면 시간이 어찌 가는지 모르게 빠져든다. (인센스 스틱이 발암물질을 만든다는 것만 아니면 맨날 태울 텐데) 카페라테를 만들 때에 하얀 우유에 에스프레소를 벌컥 부으면 새하얗고 뽀얀 틈을 에스프레소가 파고든다. (사실 유속이 적기 때문에 이 현상은 난류라기보다는 확산에 가깝지만 넘어가도록 하자) 그럼 인센스 스틱을 태울 때의 연기와 같이 그 끝이 말려 내려가는 모습이 유리벽에 생중계된다. 난 그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누르지만, 실제 그 움직임을 정지하고 있는 사진으로 모두 설명할 순 없다. 그래서 눈으로라도 그 움직임을 놓치지 않으려고 빤히 바라보곤 한다.


같은 이유로 파도를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혼자 제주도에 여행을 가게 될 때면, 돗자리만을 챙겨서 바닷가에 나가 하염없이 일렁였다가 빠르게 흩어지고, 남은 아이들을 다시 모아 뒤로 후진했다가 다시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본다. 그 일렁임을 좋아한다.


기계공학에서는 이 움직임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계측해 보려는 노력 중 하나로 PIV라는 실험이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체의 움직임을 보려고 작은 입자를 공중에 흩뿌려서 기체를 따라가는 모습을 관찰하는 기법이다. 기계공학을 전공한 나는 대학 때 이 실험을 하게 될 기회가 있었고, 밤하늘에 수놓아진 별처럼 촘촘히 박힌 입자를 찍은 사진과 영상에 나는 푹 빠졌다. 대학생이었던 나는 단순 작업으로 그 이미지들을 원하는 각도에 맞게 일일이 돌리고 입자의 이동을 계산하는 작업을 했었는데, 그 시간들이 나는 별을 헤아리는 시간 같아서 전혀 지겹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 쪽으로 업을 택했다. 이 움직임을 조금 더 오래, 가까이 보고 이해하고 싶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이후에 난류를 관찰할 일은 만 7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단 1번 있었다).

GPT가 만들어준 PIV Raw Image


내가 이런 움직임을 좋아하는 이유는 사실 단순히 아이들이 움직이는 자동차를 좋아하고, 로봇을 좋아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움직이는 걸 눈으로 좇게 되는 것은 본능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본능보다는 내 취향일지도? 움직임이 좋았다. 어디로 갈지 모르는 흐름이 신기했다. 퍼져올라가는 연기를 보고 있자면, 갑자기 누가 건드린 것 처럼 홱 돌아 올라가는 그 모습이 흥미진진했다. 이 흐름에 규칙이 있지 않을까, 그 흐름을 완전히 이해하고 공부하고 싶었던 때도 있었다.


나는 세상만사에 걱정이 많고 안정을 추구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내 인생에 불확실성이 놓이는 것을 두려워한다. 근데 이런 난류를 보는게 왜 좋냐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유는 불확실성이다. 어디로 흐를지 모르는 그 방향이 날 더 설레게 하고 그 결과물을 더 신비롭게 만든다. 나는 요즘 유명한 수학 강사 정승제님이 인생에 대해 한 말들을 녹화해 놓은 영상에 빠져있다. 인생은 태도라는 말은 정말 격하게 공감하는데, 그 중 도대체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은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더 재미있고 살만하다는 이야기다. 나는 뜻대로 되면 더 재미있을 것 같은데. 내가 상상한대로 내 인생이 흘러가면 너무 좋을 것 같은데! 나라는 인센스 스틱을 멀리서 바라보면, 그 방향이 층류(Laminar)로 곧게 흘러가는 것보다는 역시 난류로 이리저리 부딪히는게 더 예쁘고 신비롭다는 뜻일까? 아니 근데 나는 인생의 관조자가 아니라 인생을 직접 살아가는 연기 그 자체인데...(아무래도 아직도 이해 못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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