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전시회

다른 사람의 감정일기에 울어버리는 시간

by 하빈

"얘들아 타!"

나의 첫 전시회는 그 어릴 적 미술학원에서의 소풍이었다.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전시회를 가고 싶은 사람을 신청받았고, 우리는 선생님의 차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그렇게 도착한 서울의 예술의 전당은 어찌나 크던지, 우리는 서로 손을 꼭 잡고 전시회를 감상했다.

"이거 우리가 배웠던 작가가 그린 그림이야"

한창 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시절, 선생님의 설명과 내가 읽었던 만화책들의 내용이 내 속에서 너울거렸다. 마음이 울렁울렁. 나는 책으로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 피카소와 같은 많은 거장들의 일생을 한 줄로 읽었다. 이 시기에 이혼을 했던지, 전쟁을 겪었다던지, 나라에서 쫓겨났던지와 같은 이야기들. 그런 뒷이야기 들을 재미있고 흥미롭게 듣다가, 전시회에 가서 직접 다양한 작품을 보게 되면 그 이야기들의 주인공이 엄청난 재능이 있는 예술가라는 것을 떠나, 감정을 느끼는 한 명의 사람이라는 걸 체감한다. 그 사람들의 그 시기의 감정이 작품에 박제되어 나에게 말을 거는 기분이다. 그렇게 나는 전시회에 매료되었다.


미술에 손을 떼고 나서, 학생 때는 좀처럼 전시회를 갈 기회가 없었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 나는 야금야금 전시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운이 좋게도 가장 친한 친구가 취향은 달랐지만 전시회 가는 것을 좋아했고, 우리의 취향의 공통분모에 있는 전시회를 함께 찾아다녔다. 함께 전시회에서 느낀 기분을 공유하는 것이 참 즐거웠다.

"어떤 게 제일 좋았어?"

"나는 조각 중에.."

같은 작품을 보고 서로 전혀 다른 감상을 느끼는 것에 놀라워하며, 우리의 세상을 넓혀나갔다. 참 이상하게도, 이 시기의 나는 자기 검열이 심했다. 내 감정을 감정 그대로 보기가 힘들었고, 다른 사람이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내 감정을 스스로 인정하곤 했다. 그렇다 보니,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솔직하게 파악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때, 어쩌면 시리즈를 시작했어야 했는데! 그런 나에게 같은 취향을 가진 친구는 내가 이런 것을 좋아하는 것이 옳다고 느껴지게 해서 (대체 그때의 나에게 옳다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당당하게~ 전시회를 다니고, 전시회 가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 덕에 친구들과 간 유럽여행에서도 미술관을 많이 가볼 수 있었다.


너, 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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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응 엉어어어엉


스페인에 갔다가 만난 고야의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라는 작품인데, 다들 미술책에서 한 번쯤 보았을지도 모른다. 나도 책에서 보며, 고야씨 참.. 괴이하다고 생각했었다. 이 작품을 그릴 때의 고야는 원래 살던 곳에서 이주해 병을 앓으며 칩거하며 미쳐가고 있을 때 그림이라고 알고 있었고, 나폴레옹 전쟁 등으로 세상에 환멸을 느낀 고야가 인간의 잔혹성을 표현했다는 몇 줄을 알고 봤다. 그리고 이 그림을 실제로 가서 보았을 때, 나는 그림 속의 사투르누스의 눈을 보고 전혀 다른 감정을 느꼈다. 책에서 보았을 때는 잔인하게 조각난 아들의 모습만 보였는데, 실제 본 사투르누스의 눈은 두려움과 공포, 살려달라는 애절한 구조 신호로 가득해 보였다. 사투르누스는 자신의 자식이 자신을 무너트릴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자기 자식을 잡아먹었다는 신화로 알려져 있다. 유럽 신화에 이런 비슷한 내용이 꽤 있는데, 나는 신화 참 잔인하게 만들었다 이렇게만 생각했다. 왜 자기 자식을 잡아먹을 정도로 궁지에 몰린 사람의 마음은 생각하지 못했을까? 고야씨는 혼자 칩거하며, 모두가 미쳐간다고 평할 때, 사실은 궁지에 몰린 사투르누스처럼 두렵고, 무섭고, 외로웠던 것은 아닐까? 구조 신호를 보내고 있는 그림이었는데, 다들 또 고야 이 사람 완전 미쳤네!라고 평한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자 사투르누스의 외롭고 고독한 감정이 몰려들면서 왜인지 눈물이 났다. (네, F입니다)


나는 감정의 결이 얇은 사람이다. 아주 페스츄리다. 그렇지만 겉은 딱딱해서 '전쟁의 아픔을 표현한 그림'이라는 평을 읽고, '아무래도 그렇지' 차갑게 고개만 끄덕거리다가 막상 그 사람이 표현한 그림을 보고는 광광 울어버리고 만다. '전쟁 같은 거 왜 일어나는 거야, 으어어엉'. 이런 경험을 느끼게 해주는 전시회가 좋다. 뭐지? 좀 변태인 것 같다. 이게 왜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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