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정의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고 난감하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일상이고 어디서부터가 우리의 계획하에 진행되는 모험이나 일상의 반복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휴식일 수 있을까. 그 기준을 찾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그 만큼 일상은 우리의 삶을 지속시키는 가장 커다란 에너지를 만들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누군가의 혹은 나의 일상을 객관화 해서 들여다 보면 일상의 패턴에서 오히려 더 모험적이거나 창의적인 요소들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생긴다.
이승훈 작가의 회화는 움직인다. 즉, 애니메이션이다. 그리고 그 애니메이션의 중심에는 일상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상상력이 작동하고 있다. 작가가 발견한 일상의 한 장면을 구심점으로 마치 팽이처럼 돌아가는 방식으로 작동하면서 일상의 사고들을 연결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그 연결되는 장면들이 철저하게 회화의 기법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작가의 애니메이션은 그리는 행위와 개념의 확장인 셈이다.
돌아가는 소주병이라든지, 초록의 나무들이 흔들리는 창 앞에 서 있는 붉은 여인, 커다란 도자기가 돌고, 그 도자기에는 운동하는 사람들이 각자 자기 스타일의 운동을 하고 있다. 왁자지껄한 원탁의 테이블과 사람들, 물레방아 아래에서 돌고 있는 항아리 그 항아리에서 놀고 있는 사람들. 조용한 겨울산을 맴돌고 있는 한 마리의 새. 이 모든 것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은 회화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는 이야기의 흐름, 즉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이다.
특히, 겨울산을 맴도는 새는 고즈넉한 새의 비행을 쫓다보면 심적인 평안함을 느낄 수 있다 물론, 마지막에 여우에 물리는 반전이 있기는 하지만 이 역시 애니메이션이 서사적 표현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서사적 가능성이야 말로 시각예술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다. 일반적으로 평면회화에 있어 서사적 가능성은 온전히 감상자의 상상과 경험에만 의존하게 되지만 애니메이션의 경우 창작자의 개입과 감상자의 상상이 어느 정도 타협점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이 부분은 애니메이션 작품을 감상할 때,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또한, 왁자지껄한 원형 테이블의 경우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하나하나 쫓게 된다. 와인을 마시는 여인이 하고 있을 것 같은 이야기, 무료하게 자동차를 가지고 노는 사람의 표정, 차를 마시면서 계속 떠들고 있는 사람이 하는 이야기, 벽에 포스터에 붙어 흔들리는 사람, 그 앞에 다리를 흔들면서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 등. 그리고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너무나 일상적인 사물들의 움직임들까지. 계속 반복되는 그들의 행위를 바라보다 보면 각 인물들의 이야기들이 하나씩 나의 일상과 겹치면서 이야기가 만들어 진다. 이는 회화와 애니메이션의 감상이 동시에 이루어 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마치 작가의 일상에서 나의 일상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무엇보다 눈 여겨 볼 것은, 작가가 표현하고 있는 화면의 구성이다. 거기에는 그 어떤 회화적 요소가 없다. 말하자면, 원근이라든지 사물의 개연성이라든지 시점이라든지 회화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완전히 무시되어 화면이 구성된다는 것이다. 철저하게 작가의 사고의 흐름만으로 구성된 듯 하다. 하지만 이러한 표현 기법을 통해 작품 속의 인물들이나 사물들은 각각 개별적인 감상이 가능해 진다. 오히려 작가의 철저한 계산을 통해 그려진 것처럼 작가만의 독특한 장치인 듯 하다. 가장 일상적인 것들로부터 시작된 상상력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 회화는 그 개념과 표현 영역이 확장된다. 이로써 다양한 일상의 경험들이 응집되고 일상은 곧 모든 예술의 바탕이 된다. 따라서 예술은, 특히 회화는, 나아가 움직이는 회화는 우리의 일상을 애니메이션의 프레임처럼 한 컷, 한 컷 다시 한번 들여다 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