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몸이 행복하면 마음도 행복하다. 하지만 보통은 마음이 행복해야 몸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마음에 평안하면 몸도 평안하다. 심한 스트레스가 쌓이면 몸에 병이 생기듯이 마음의 상태가 곧 몸에 영향을 끼친다. 마음이 행복해야 몸이 행복하다. 그렇지만 몸이 행복해야 마음도 행복하다. 두 문장을 하나로 합하면 몸과 마음이 행복할 때 비로소 진정한 행복하다는 말이 된다. 마음이 중요한가 몸이 중요한가를 따지려는 것은 아니다. 중요하지 않은 것이 있겠는가.
몸의 행복은 물질주의를 떠올리기 쉽다. 노동에 시달리던 몸이 휴식을 취한다면,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면, 비싼 옷으로 치장할 수 있다면 행복한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몸의 행복은 물질적 만족과는 거리가 멀다. 물질은 유한하다. 만일 물질로 행복의 척도를 삼는다면 물질은 정해져 있고 누군가와 나누어야 하므로 내가 행복한 만큼 다른 사람이 불행해진다. 게임과도 같은 너와 나의 경쟁 구도는 행복이 아니라 일시적 만족감을 위해 배팅하는 꼴이다. 스포츠의 세계는 승자와 패자가 명확하다. 이겼을 때 말할 수 없는 커다란 기쁨을 느끼지만 반대편에서는 비탄의 소리가 들린다. 상대방의 슬픔을 딛고 느끼는 행복은 허망하다. 새 자동차를 사거나 스포츠 게임에서 승리했을 때의 만족은 근원적인 행복과 큰 관계가 없다. 진짜 행복은 시간과 무관하고 끝없이 샘솟는 샘물처럼 무한하다. 내가 행복한 만큼 저편에서 불행하지도 한다.
행복지수는 독서량과 비례하지 않는다. 책을 많이 읽은 지식인이나 현자라도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다면 농사짓는 것에 있어 농부의 솜씨를 따를 수 없다. 책은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책이라는 간접적 경험을 통해 세상을 알기도 하고,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머리로만 아는 세상은 한계가 있다. 행복학에서는 생각을 몸의 행동으로 표현할 때 진정으로 행복의 길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친다.
행동이란 타인과의 소통을 전제로 한다. 행동으로 실천할 때 긍정의 힘을 얻을 수 있다. 몸의 행복은 지금 이 순간을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이다.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 나의 자리에서 내가 실천하고 있는 일,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과의 관계가 행복의 열쇠가 된다. 막 떠난 열차를 아쉬워하며 빈역에 주저앉아 있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흔히들 “그때가 좋았어”라고 말한다. 이십 대는 십 대가 좋았다고 하고, 오십 대는 사십 대가 좋았다고 한다. 칠십 대는 십 년만 젊었으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하고, 구십 대는 팔십 대라면 오죽이나 좋을까 하고 말한다. 이미 지나간 세월을 되돌려 놓을 수도 없다. 가장 소중한 금은 황금이나 백금이 아닌 지금이다. 지금 나의 몸이 행복하면 행복한 것이다. 오늘 몸이 행복하면 내일도 행복할 것이다. 내일을 생각하면서 불안한 마음을 가진다면 내일은 불행해질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 미래의 불행을 도외시하자는 말이 아니다. 미래의 행복을 꿈꾸기 위해서는 현재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행복한 생각은 가능한 한 자주 할수록 좋다. 불행한 생각이 엄습하면 흥겨운 노래를 부르거나 포복절도의 영화나 코미디 프로를 보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권장할 만하다. 친한 친구와 유쾌하게 수다를 떠는 것도 좋고 좋아하는 사진을 곁에 놓고 자주 보거나 반려견과 교감하는 것 역시 좋은 방법이다. 이처럼 몸의 감각적 실천은 곧 뇌의 행복감으로 이어진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습관을 갖느냐에 따라 뇌가 변한다. 행동과 습관 하나하나가 뇌와 기억력에 영향을 미친다.” 뇌가 행동과 습관을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행동과 습관이 뇌를 변화시킨다는 사실은 우리가 행복을 향해 행동을 바꾸고 습관을 바꾸면 궁극적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는 말이다. 행복을 샘솟게 하는 행동과 습관이 장기기억으로 저장된다면 불행의 그물망에서 벗어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