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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탈북 11화

# 11 화폐개혁

by 한성태

아직도 생생한 그때다. 화폐개혁으로 인한 사람들의 통곡 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숱한 사람들의 가정을 파산시키고 목숨을 끊게 한 화폐개혁. 나라가 국민에게 사기를 치고 국가가 국민의 재산을 깡그리 빼앗아 간 그때를 결코 잊을 수 없다.




2009년 11월.

나라에서는 5천 원권 신화폐를 찍어내면서 원래 쓰던 돈(구화폐)의 10배라고 공표했다. 그리고는 “강성대국의 문이 열린다”라는 선전자료를 함께 배포했다.


화폐교환은 한 가정당 10만 원까지로 제한했다. 그러니 바꾸지 못한 돈은 그날부터 모두 휴지가 될 판이었다.

10만 원도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돈을 대신 맡아 바꾸어주고 5만 원의 이득을 챙겼다. 하지만 열심히 모아 많은 돈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다 바꾸지 못한 화폐로 인해 통곡했다.


김일성 초상이 그려있어 마음대로 접지도 말라던 100원짜리 옛날 지폐는 강물에 떠다녔다. 쓰지 못하게 된 돈을 자루에 담아 불태워 감옥에 간 사람, 돈을 다 날리고 자살한 가족, 그야말로 아비규환이 벌어졌다.

이런 일이 생길 것을 미리 짐작했는지 김정일은 이 모든 책임을 노동당 비서 박남기 부장에게 씌워 죄인으로 몰아 처형하였다. 나라에서 시작한 화폐개혁인데 어떻게 최고지도자는 몰랐다며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물어 처형할 수 있었을까?


설상가상으로 새 화폐가 지난날에 쓰던 돈의 10배라고 나라에서 정해 놓았다는 주장을 ‘그대로 하겠지’ 하고 믿었던 사람들은 또다시 큰 실망을 하게 되었다. 화폐개혁이 시작된 때로부터 20일이 지나자 그전에 쓰던 그 시세로 새 화폐의 가치가 폭락해 버렸기 때문이다.

강성대국을 위한 화폐개혁은 결국 국민들의 재산을 눈 한번 깜빡하지 않고 단번에 전부 몰수해 버린 셈이 되었다.



화폐개혁으로 인해 나라에서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친 일들은 수두룩하다.

북한은 10년 동안 군 복무한 제대군인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대규모 인력이 필요한 곳에 무리 배치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중 탄광이나 금 광산에 배치되는 경우가 있는데 갱에서 일하게 되면 진폐증에 걸리는 경우가 많아서 이전에는 난장(갱 바깥에서 일할 수 있는 곳)에서 일하게 해 달라며 간부들에게 뇌물을 주었다. 하지만 배급이 중단된 이후에는 갱 안에서 일하게 해달라고 뇌물을 준다. 갱 안에 들어가 금이 든 돌을 훔쳐 나오면 그것이 가족을 살리기 때문이다.


주먹만 한 돌 10개 정도를 집으로 가져와 그것을 망치로 깨서 갈아 금을 채취하면 하루에 금 1g 정도를 벌 수 있다. 1g의 금이면 북한 돈 10만 원이다. 쌀 1kg에 5천 원 하였으니 큰돈이 아닐 수 없다.

북한 돈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서 사람들은 거래에서 중국 돈을 선호하는 현상이 많아졌다. 또 광산 사람들은 금을 돈으로 바꾸지 않고 그냥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화폐개혁은 발표 전까지 일체 비밀에 부쳐진 일이었으니 일반인들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화폐개혁을 하기 2~3일 전, 나라에서 돈(구화폐)을 자동차에 싣고 와서 금 1g에 20만 원을 주겠다고 선포했다. 사람들은 그 소리에 귀가 솔깃해졌다. 시세의 2배를 준다고 하니 숨겨 두었던 금을 돈으로 바꾸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며칠 지나 그 돈들은 휴지가 되었다.


그러니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작정하지 않고는 엄두도 낼 수 없는 국가가 벌인 사기극이었다.




그 이후 주민들의 삶은 더욱더 힘들어졌고 정부를 불신하게 되었으며, 사람들은 더 이상 북한 돈을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2009년 12월, 김정일이 죽고 나서 사람들은 억지로 끌려다니며 애도를 했으며, 한겨울에 애도장으로 가다가 얼음판에 넘어지는 사고가 나 돌아가시는 어르신들도 많았다. 눈물을 억지로라도 흘려야 했기에 눈에 침을 발라 눈물처럼 보이게 하는 망측한 일도 많았다.


그때 김정은이 김정일의 애도장에 솜옷 패딩을 입고 들어가라고 했다며 ‘인민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라고 선전하던 것이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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