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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탈북 12화

# 12 북한 땅을 떠나다

by 한성태

원하지 않아도 세월은 간다. 암흑의 땅에도 어김없이 봄이 찾아오고 겨울이 온다.

한 해가 지나고 좀 나아지려나 하던 희망이 물거품이 되어도 다시 또 희망을 가져보는 게 인간인 것 같다.

한 해가 가면 또 한 해가 온다.


2012년 또 봄이 찾아왔다.


해마다 2월 16일, 4월 15일이 되면 집집마다 닭알(계란) 5개, 콩 1kg, 깨 등을 무조건 바쳐야 한다. 김정일, 김일성 생일을 맞아 10살 미만의 아이들에게 수령님의 선물이라며 사탕 500g, 과자 500g을 이것을 만들기 위한 원료를 집집마다 걷는 것이다.


밥 한 끼도 제대로 챙기기 어려운 집들에서 본인들은 한번 먹어보지도 못하는 닭알을 내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그렇게 강제로 걷어간 원료들조차 당 간부들 집에 우선 배달되기 때문에 선물을 만드는 데는 이중 1/10이나 들어가나 마나다.


조선인민혁명군 창건일로 기념하는 4월 25일이 오면 인민군대를 지원해야 한다며 김치, 된장, 산나물 등을 또 바쳐야 한다. 그러니 4월이 되면 산과 들로 어른, 아이들 모두 나물을 캐러 간다.


그렇게 분주한 4월이 지나고 5월이 되었다.




나는 이 땅에 더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떠날 준비를 하였다.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10년 전부터 해왔지만, 아들이 너무 어리다는 게 문제였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떠나는 길은 그야말로 자살의 길이라는 것이 자명했다. 하지만 이젠 아들이 많이 자랐고 군사동원부로부터 입대 통지를 받았다.


아들을 군대에 보내고 나면 이제 또 10년을 기다려야 한다. 나는 병원에 다니던 의사 친구에게 아들의 전염병 진단서를 부탁해 제출하고 입대를 1년 보류시켰다.


그리고 그 길로 아들을 데리고 기약할 수 없는 탈북의 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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