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간 불면이 심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활발하게 활동을 해도 가끔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가 있다. 특히 이 집에 사는 대부분의 시간을 깊게 잠들지 못했다. 이사 와서 많은 불면의 시간을 보냈던지라 원인은 나의 문제를 비롯해 사용하고 있는 물건이나 환경, 살고 있는 위치 그리고 형이상학적인 부분에 원인이 있을 거라 여겼다.
처음엔 원인을 나에게로 돌렸다. 낮에 잠시 든 단잠 때문에, 오후에 커피를 마셔서, 저녁을 너무 과하게 섭취해서 등등 작은 부분 하나까지도 나에게 원인이 있을 거라 짐작했다. 그렇지만 하루 종일 바쁘게 지낸 날에도, 분명 열심히 유산소 운동을 한 날에도 잠이 오지 않을 때가 있다.
열심히 불면의 원인을 분석을 해봤지만 결론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사용하고 있는 물건에 원인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두 명이 잠들기엔 좁은 침대가 잠을 방해한다는 데에 큰 원인이 아닐까 싶어 한 단계 큰 침대로 바꿨다. 그러나 침대를 바꾸고 이 주 정도 지내보니 크기가 수면의 질에 영향을 조금 주었겠지만 불면증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렇다면 집의 기운이나 풍수지리 관련해서 원인이 있는 게 아닐까? 보이지 않은 무엇인가에 원인을 돌렸다. 보다 보니 두침방향에 대한 자료를 우연히 찾게 되었다. 두침방향은 머리를 두고 자는 방향으로, 개개인의 사주마다 다르고 알맞은 방향에 수면을 취하면 수면의 질뿐만 아니라 운이 좋아진다고 하며, 맞지 않은 방향은 수면의 질을 방해한다는 과학적 설명이 불가능한 이론이었다. 그러나 잠에 깊게 들고 싶었기에 그 정보를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또 다른 희망을 찾을 가능성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알아보니 쥐띠는 북쪽 방향으로 머리를 눕혀야 한다고 하는데 현재는 반대방향으로 자고 있어서 아예 다른 방에서 잠을 청해야 했다. 다른 방에 가구를 전부 빼내어 오직 나의 두침방향을 위해서만 방을 개조해야 한다는 비효율적인 점이 있었다. 그래서 이사를 갈 때까지만 기다리기로 결심한다.
더 나은 선택이 있을 거라는 희망에 의존한다. 잠을 쉽게 들 수 있다는 어떤 하나의 희망이 있다면 매일 잠에 들지 않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루는 이런 생각을 했다.
“침대를 바꾸고, 침대 방향을 바꾸고, 두침 방향을 바꾸고, 집을 바꾼다고 한들 만약 불면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땐 무엇이 원인이 될까”
종교가 없지만, 인간이 볼 수 없는 흐름이라는 것을 믿는 편이다. 그걸 운이라고도 하는데, 만약 현재 이 운과 시기가 불면을 통해서 어떤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 시기라면 놓치고 있는 게 뭘까? 생각했다. 세상이 내 뜻대로 풀리지 않았던 시기를 지나오면서 잠시 쉬어가야 했던 적이 있는데, 이렇게 몇 년간 불면이 잦았던 이 시기를 통틀어서 내가 배워야 하는 것들은 무엇이었나 생각했다.
항상 저녁 11시쯤 자면 새벽 1~2시쯤 깬다. 그 후론 쉽게 잠에 들 수 없을 때가 많았다. 그러면 일어나서 컴퓨터를 켜서 운세를 보거나, 때로는 미래를 계획하곤 했다. 일기를 쓰면서 생각 정리를 하기도 했고, 그간 알아주지 못했던 내 속마음을 알아주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새벽은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다. 모두가 잠든 사이에 그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서러움을 알아주고, 과거에 분노했던 장면을 되새기며 화를 내보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묵혀두고 숨겨두었던 복잡한 감정들을 마음속으로 꺼내 시원하게 털어놓고, 고민과 그간의 열정을 되돌아봤던 시간이 된다.
잠들 수 없었던 많은 새벽의 시간 동안, 내면에 아픔으로 과거 어떤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았고, 주었는지를 곱씹었다. 본의 아니게 많은 반성을 하였고, 수 십, 수 백번의 반추를 통해 앞으로의 인생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계획은 무엇인가를 구상했다.
어쩌면 불면은 지금 이 시기에만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만약 1년 뒤가 되거나, 혹은 3개월 뒤 빠르면 일주일 뒤 나에게 바쁜 일이 생기면 새벽에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기에도 벅찰 테니까..
불면에 불평했지만 결국엔 불면을 받아들였다. '잠 못 드는 시간이 많아지면 병에 들게 분명해, 남들 잘 시간에 잠들지 못하고 늦게 하루를 시작하는 나 자신이 참 한심해, 뒤쳐질 거야'라는 두렵고 부정적인 생각들에 동요하기보단 이유가 있을 거라며 불면을 받아들였다. 삶은 늘 다양한 방식으로 나에게 숙제를 건네주었으니까 불면 또한 또 다른 방식의 가르침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잠들지 못하는 밤마다 걱정한들, 내 마음은 잠들지 못해야만 하는 어떤 원인이 있을 거라고,
세상이 잠든 시간에 오롯이 무엇인가를 고민해야만 하는 어떤 이유가 있을 거라며
나의 불면에 작은 이유를 스민다.
__매너티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