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먹는 마라탕
어제 아이가 좋아하는 마라탕을 포장해 와서 먹었다.
전날 밤 아이와 좀 투닥거렸다. 아이가 밤에 잘 시간인데 배가 고프다고 밥을 찾길래. 안돼.라고 단호하게 말하면서 저녁을 많이 먹어야지 왜 맨날 잘 시간에 밥을 찾냐고 화까지 냈다. 그냥 안된다고만 하면 될걸.. 안 그래도 배고파서 힘든 아이에게 짜증을 냈다.
미안한 마음에 아이에게 사과하면서 일어나자마자 마라탕을 사줄게~ 하고 약속을 했다. 그러니 꿔바로우도 사줘~라고 귀엽게 말하더니 이내 잠이 든다.
아이를 보는 내 마음은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 마음을 다잡고 해야 하는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낼 뿐이다. 많이 생각하지 말자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다음날 아침 정말 마라탕을 잔뜩 사 왔다. 아이가 좋아하는 달달한 꿔바로우도 같이. 거하게 먹고도 남아 저녁에는 당면과 팽이버섯을 넣고 끓여서 국처럼 밥과 함께 또 먹었다.
이제 배불러 못 먹겠어~
아이가 밥을 반쯤 남긴 채 포기선언을 한다. 아직 당면이 다 불질 않아 몇 가닥만 건져주고 야채만 알뜰히 모아 퍼준 탓에 마라탕을 끓이는 냄비에는 당면만 가득 남아있다.
그러니까 이제 마라탕이라고 볼 수는 없고 그냥 당면이 잔뜩 담긴 국요리가 덩그러니 남은 것이다. 딱 버려야 할 것 같이 생겼는데 보글보글 끓고 있는 국물사이로 빼꼼 빼꼼 당면 가닥들이 보인다. 아깝다.
그대로 식혀서 냉장고에 넣어둔다. 내일 나의 일용할 양식이 될 테니까.
마침 오늘 아이가 피아노 연주회를 갔다. 배운 지 육 개월쯤 되던 달에 학원발표회 참가신청을 받기에 신청해 둔 것이 오늘이다. 6시에 시작하는 연주회인데 아이는 12시에 학원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아침부터 아이 밥 먹이고 도시락을 싸고 치우고 하느라 정신이 없어 배고픈 줄도 몰랐는데 집에 와 앉으니 허기가 밀려온다.
아 마라탕이 있었지? 어제 안 버리길 잘했네
가끔 버리지 않고 냉장고에 넣어둔 음식을 다음날 먹게 되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냉장고에서 꺼낸 마라탕은 나 먹지 마시오라고 말하는 듯 험상 구스다. 그러나 끓이면 또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제 끓여놓고 바로 넣어놓은 거라 위생적으로도 괜찮다. 모양이 좀 이상할 뿐이지.
냄비 앞에 서서 인덕션을 최고로 높게 올려놓고 끓기를 기다린다. 얼마 안 되어 보글보글 마라탕이 끓는다. 적가락으로 대충 휘휘 젖어서 그릇에 옮겨담으니 제법 괜찮다.
국물은 어제부터 몇 번이나 끓인덕에 아주 진국이 되었다. 마라탕은 끓이면 끓일수록 매운맛이 사라지고 국물이 눅진하게 변해서 더 맛있다. 내 입맛에는 그렇다.
게다가 어제 넣어둔 당면이 불어 터져서 쫄깃함은 다 사라지고 뚝뚝 끊어진다. 정말 최고다. 이렇게 생각하며 당면을 후루룩후루룩 먹다 보니 옛날 생각이 난다.
어려서도 나는 불어 터진 떡국을 더 좋아했다.
엄마가 가끔 우리 삼 남매에게 잘해주던 떡국. 처음 끓인 떡국도 맛은 있었으나 나는 다음날 먹는 불어 터진 떡국이 더 좋았다. 다음날에 퉁퉁 분 떡국은 아무도 먹는 사람이 없었다.
이미 실컷 먹어서 질린 탓도 있었고 첫날에는 있던 만두가 없어서 그렇기도 했다. 양이 적어서인지 떡보다는 만두가 항상 인기가 많았다.
다른 형제 그릇에 만두가 하나라도 더 들어있기라도 하면 둘째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나는 왜 만두가 적어?라고 엄마에게 따지던 것도 생각이 났다. 떡국을 퍼담는 엄마에게 둘째가 항상 나는 만두 많이~라고 외치던 것도.
만두가 싫었던 건지 철없는 그 말이 싫었던 건지 나는 항상 엄마에게 나는 만두 별로야~ 조금만 줘~라고 했던 것도 기억이 난다.
그러다 다음날 학교 갔다가 집에 와서 냄비 안에 국물을 다 빨아들여 퉁퉁 분 떡이 남아있으면 접시에 가득 퍼놓고 아주 맛나게 먹곤 했다. 이건 아무도 좋아하지도 않고 탐내지도 않아 마음껏 먹어도 안심이었다.
가끔 만두가 너무 끓여서 한두 개 터져서 만두피는 녹아 없어지고 만두소만 남아서 고명처럼 떡사이에 끼어있을 때도 있었는데 그건 그거대로 별미였다.
불어 터진 마라탕과 불어 터진 떡국. 마음 놓고 혼자 실컷 먹어서 더 맛있는 나만 아는 추억.
오늘도 추억이 하나 쌓였다. 또 십 년 뒤에는 오늘을 어떻게 생각하게 될까.
지나고 보면 모든 게 다 아련한 추억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