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여행_0022
이제 제법 낮 기온이 25도를 넘는 초여름이 되어 버린 듯하다.
지쳐간다. 매일아침 아들 녀석들 아침을 챙겨주는데도 밥과 반찬 대신 베이커리에서 사 온 통밀빵과 계란 후라이로 내어 주는 날들이 많아진다.
동그랗게 생긴 통밀분말이 들어간 빵의 배를 반으로 갈라서 버터를 얇게 두른 넓은 프라이팬에 네다섯 개를 올리고 노릇노릇 구워서 주면 그저 맛있기만 하다. 건강한 아침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녀석들도 나도 잘 먹으니 그만이다.
상가 2층 기타 교습소로 차를 몰고 간다. 상가 앞쪽의 작은 주차장에는 차량 4대만 주차가 가능한데 이전 초급반 수업생들과 11시 중급반 수업을 들으러 오는 차량으로 주차가 거의 불가능하다. 아파트 단지 주차장에 급하게 차를 주차시키고 뒷좌석에 앉아 있는 기타를 깨워 손으로 안고 교습소로 들어간다.
약 1개월 전에 새로운 남자 3명은 실력이 좋고 출석률도 거의 100%이다. 나 보다 최소 10~15살은 많은 직장을 이미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둔 나이에 그 열정을 가지고 기타를 배우러 온다는 것이 좋아 보이 다가도 그 늦은 나이에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 약간 안쓰럽게 느껴진다. 어찌어찌 육아 휴직으로 기타를 다시 배우게 된 내 처지가 상대적으로 훨씬 나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쓸데없는 남과의 비교는 내 사고와 삶은 더 갉아먹는 좀 벌레 같은 것이리다.
수업의 시작은 손가락 피킹연습이다. 손가락 크로메틱과 스케일 연습을 빠르게 진행한다.
“오랜만에 ‘잊혀진계절’ 전주 부분 멜로디를 해 보도록 할게요. 이번에는 피크로 말고 손가락으로 해 보세요.”
미파솔 미도시 레미...
피크로 연습해서 외웠던 멜로디를 손가락으로 연주하려고 하다 보니 익숙하지 않아 연결이 되지 않는다.
“아르페지오 완주법으로 연주를 계속해 왔는데 새로운 연주 팁을 알려 드릴게요. 4박자의 한 마디에 코드가 2개가 이어질 때 이어지는 코드의 근음과 1번 줄을 같이 쳐 주세요. 곡은 130페이지 ‘모든 날, 모든 순간’ (폴킴) 노래를 펴주세요.”
이 곡은 기타 교실 초급책 130페이지와 개인적으로 산 Tab 악보에 수록된 곡으로 기타 악보 중에 인기가 있는 곡인 것 같다. 드라마 Ost 곡이라고 하는데 불러보지 못해 낯설다.
멜로디와 가사가 어색하여 그저 코드만으로 따라서 연주를 해 본다. 완주법으로 한 마디의 이어지는 코드의 근음을 같이 연주하니 곡의 분위기가 너무 확연하게 좋아진다. 왠지 화음을 제대로 잡아 주면서 곡의 멜로디와 가사가 동 떨어지지 않고 멜로디 위에 가사가 완벽하게 얹어지는 느낌이다.
“‘사랑으로’를 멜로디 연주를 해 볼게요. 이번에는 같이 합주를 해 보도록 할게요.”
‘내가 사랑하는~ 동안에...’
여기저기 기타의 멜로디 연주가 시작된다. 각자의 멜로디와 애드리브를 넣어가며 연주가 진행되고 박자와 음정은 합주 속에서 저마다의 엇박자와 빗겨 난 음정들로 채워지고 먼저 소리 내어지고를 반복한다. 한두 명씩 곡의 흐름을 놓쳐 버리고 곡의 절정에 이르러서는 안 선생과 나를 포함한 몇 명의 기타 소리만 이어진다. 나 또한 중간 부분의 ‘그러나~ 솔 잎~ 하나 떨어지고’ 부분에서의 손가락 연주를 놓쳐버리고 만다. 그러고는 마지막 멜로디 부분에 다시 돌아와 연주를 마무리한다.
“어찌 연주 소리가 가다가 너무 조용해지네요?, 혹시 제 기타 소리만 줄어드나 했는데..” 안 선생이 학생들을 위로하듯 물어본다.
“자신감이 싹 줄어드신 것 같아요. 더 연습을 계속해 주세요.”
“지난주에 했던 E코드에서 A코드로 애드리브 연습을 다시 해볼게요.”
그렇다. E(파)와 A(라) 음 사이에 코드로 보아도 G(솔)이 들어간다. E코드나 음으로 연주를 한 뒤 G음을 잡아주고 A음 A코드를 연주한다. 애드리브가 기술적으로 멋이 나거나 재즈처럼 멜로디의 자유로움을 더해 주기도 하지만 가끔은 곡의 흐름과 분위기를 방해하거나 경망스럽게 들리는 경우가 있으니 적절히 넣어주는 것이 좋다.
다음으로는 한동안 안 선생이 강조하는 ‘옛사랑’ 곡이다. 개인연습을 진행하고서 합주가 시작된다. 한 마디의 2개의 코드가 있고 바래코드 F#m, C#m, Bm 코드 등이 연속적으로 이어 지기 때문에 코드는 놓치지 않더라도 코드 소리까지 제대로 내기 위해서는 더 연습이 필요한 것 같다. 진짜 문제는 연습이 더 필요하다고 느끼지만 그 방법을 하나하나 연습을 통해서 나의 손가락의 위치와 각도 누르는 힘의 정도 등이 아직까지 완전한 최후의 모습으로 가기에는 조금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것이다.
유튜브의 다른 사람의 기타 연주를 보는 것은 그래서 많은 도움이 된다 같은 곡이나 다른 곡이라도 기타리스트가 잡는 손가락의 모습 바래코드의 손가락 각도 누르는 힘의 정도(어느 정도 감으로 느껴짐)도 지금 나의 어설픈 운지법에는 도움이 된다.
“퍼커시브 연주를 연습할게요. 54페이지 ‘혜화동’입니다.”
퍼커시브 연습이 조용한 곡으로 가볍게 마무리가 되었다.
“오늘은 3 핑거 곡으로 새로운 곡을 해 볼게요. 어느 정도 연습이 되었으니 152페이지 붉은 노을입니다.”
이 곡에는 G#, C#m, B, B7 코드 등이 있는데 바래코드를 적절히 연결해 가면서 연주를 해야 한다.
“자 연주를 해 볼게요.”
곡 자체의 리듬이 빠르다 보니 나를 포함하여 대부분 곡의 흐름을 놓치고 코드도 놓치고 만다.
“엉망이죠? 하하 엉망진창이 돼 버렸네요 하하”
안 선생의 웃음으로 우리를 위로한다. 일부의 수업생은 같이 웃기도 하고 아쉬운 모습을 보이지만 어떤 수업생은 초조함과 비굴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어 보인다. 아직 코드 하나하나가 익숙하지 못하면 합주할 때는 여간 난감한 게 아닐 거다.
이어지는 하이코드 연습을 간단히 하고 Bm, Cm, Dm, Em의 minor 코드의 바래코드까지 연습을 진행한다.
“하이코드를 칠 때 꼭 아셔야 하는 것이 ABCDEFG 음이 있는데 반음이 있어요. BC, EF인데요. 뭐라고요?”
“BC, EF요”
나이 든 남자분들과 아직 하이코드의 반음 위치 변화등에 익숙하지 않은 수업생을 위해 초등학생에게 설명하듯 안 선생의 설명이 이어진다.
“반음을 외우는 방법을 알려 드릴게요. 예전에 가난한 20대 청년이 차를 사고 싶었는데, 지나가는 EF소나타를 보고 꽂힌 거예요. 그런데 가진돈이 없고 현금도 없고 해서 카드로 할부로 거래를 해야 했지요. 카드가 어떤 카드였게요?”
설마설마했는데...
“BC 카드요”
“맞아요. BC 카드로 EF소나타를 샀다. 이렇게 외우시면 되겠죠?”
BC카드로 EF소나타를 사는데 반음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지만 시시컬렁한 이런 농담도 나름 통기타 수업의 맛이라고 해야겟다.
“월세로 근근이 살아가는 이 청년이 BC카드로 EF소나타를 할부로 사버려서 매일 라면만 먹고서 살게 되었데요. 그랬더니 어떻게 되었냐면... 얼굴인 반쪽이 되어버렸지 뭐예요. BC카드!, EF소나타, 반쪽(반음)이다. 이렇게 외우시면 됩니다. 하하하”
“탄아 이해했지?”
“네 그런데 하이코드가 잘 안돼요?”
“그건 하나하나 위치를 잡아보고 안되면 동영상 보면서 개인적으로 연습 더 해야 돼”
“누구예요? 라이브로 듣는 학생이에요?”
“아... 예전에 수업 듣던 초등학생인데, 캐나다로 이민 가서 거기에서 라이브로 수업을 들어요. 거기는 지금 저녁시간이지요.”
아. 타이탄의 탄 이란 녀석은 캐나다로 이민 간 초등학생 수업생이었던 것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탄아 수고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