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에 따르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일체의 설명 없이 예수는 막바로 그 나라가 다가왔다고 선포하였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이천 년 전 유대 갈릴리 사람들이었다. 그 나라에 대한 특별한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당시 갈릴리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함께 느끼고 있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염원과 그 나라가 온다는 믿음이 밑바닥에 깔려 있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를 에워싸기 시작했고 예수는 그들이 이해하고 있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생각들과 자신의 생각이 다른 부분들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나라 비유 이야기들이다.
예수는 기도의 원형을 가르쳐 주었다. 바로 주기도문이다.
이렇게 시작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옵시며…” 나라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다. 그리고 그 나라는 “임하는” 것이다. “임하다” 곧 “come”이다.
하나님 나라는 “온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다는 선포나 나라가 임하소서 하는 기도에서 하나님 나라는 역사 한복판 곧 우리들의 삶의 현장 바로 오늘 여기 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복음서 어디를 훑어보아도 한국적 생각과 관습에 젖어 쓰는 “천당”이라는 말에 해당되는 표현은 없다. 더더군다나 “천당에 간다”는 표현도 없다. 다만 주로 마태가 기록한 복음서에 “하늘나라에 들어간다”는 표현들이 있지만 이 말은 우리들이 생각하는 “천당에 간다”는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마태의 유대교적 전통과 그들의 역사적 관습에 따른 표현 “성전에 들어간다”라고 하는 매우 현실적 상황을 나타내는 어법이라는 말인데(이 부분은 슈바이처의 해석이다), 성서의 본뜻은 하나님의 나라는 오는 것이지 우리가 그리로 가는 것은 아니다는 말이다.
적어도 예수가 말한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뜻의 그런 나라는 아니다. 그 나라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한 복판 바로 여기 지금 오늘 가까이 왔다. 사람이 죽은 후 또는 세상이 종말을 맞은 후에 대한 열쇠는 세상 누구도 갖고 있지 않다. 그것은 오로지 신의 영역이다.
“나”라고 하는 인생을 놓고 보자. “나”는 죽어서가 아니라 살아서도 하루에 열두 번씩 지옥불에 던지어진다. 끊이지 않는 탐심(貪心)과 욕심과 음심(淫心) 거기서 끝나기만 한다면야 얼마나 좋으리. 나 하나 세우자고 아니면 조금 편하자고 이어지는 거짓말과 허세 진짜 가도 열두 번씩 간다. 지옥에. 이 어쩔 수 없는 “나”는 예수에 기댄다. 예수의 십자가에 기댄다. 그의 십자가를 대신 지기는커녕 그의 십자가의 공로 의지하여 “내가 예수 당신을 믿사오니” 그 말 한마디로 하루 열두 번씩 지옥불에 던져지는 그 순간 나는 천국열차로 갈아탄다? 예수는 결단코 그렇게 쉬운 하나님의 나라를 말하지 아니하였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는 예수의 선포를 들은 이들은 이 천 년 전 유대 갈릴리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이해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것이었을까?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주권을 갖고 통치하는 나라이다. 유대의 역사는 이 전통으로 이어 온 역사이다.
‘오직 여호와만'이라는 기치 아래 역사를 일구어 온 민족이 그들이다. 다윗의 후예에서 구세주가 나타나 하나님 나라를 건설한다는 믿음으로 지탱해 온 역사이다. <반가워라, 기쁜 소식을 안고 산등성이를 달려오는 저 발길이여! 평화가 왔다고 외치며 희소식을 전하는구나. 구원이 이르렀다고 외치며 너희 하나님께서 왕권을 잡으셨다고 시온을 향해 이르는구나(이사야 52,7)> 유대민족 염원의 소리이다. 하나님이 왕권 곧 주권을 세우는 현실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이다.
예수가 살았던 시절은 이 하나님의 주권이 아주 실종된 상황이었다. 유대민족은 로마의 식민이 되어 로마황제의 통치 아래 있었다. 조선총독부 통치 아래 일본의 식민이었던 한민족이었다. 썩을 대로 썩은 성전체제는 유대민족에게 이중고(二重苦)를 안겨 주었다. 당시의 성전체제는 엄청난 권력을 행사하였다. (덧글 하나 붙일까? 이즈음 한국에서 “그때(일제강점기)가 좋았다”는 미친놈들이 널 뛴다고 하더라만, 그게 우리 민족만 그런 게 아니다. 어느 민족, 어느 때건 그런 미친 종자들은 있어 왔다. 더하여 역사는 정말 긴 것이다. 하여 자괴는 금물일진저.)
이른바 산헤드린과 성전의 두 권력은 당시 유대인들의 등에 엄청난 짐을 지우는 권력기관이었다. 산헤드린은 유대인들을 대표한 최고의결기관, 오늘로 말하자면 국회쯤 되겠다. 당시 로마제국은 산헤드린에 보내는 공문서에 ‘정부’, ‘원로원’ 또는 ‘예루살렘 시민’이라고 호칭했던 것으로 보아 유대민족을 대외적으로 내세우던 기관쯤 될 것이다. 대사제를 중심으로 10명 내외의 제사장으로 구성된 상임집행부에 의해 운영된 성전체제는 그 권한이 막강하였다.
일테면 경제발동권이 그것이다. 첫째가 십 분의 일세(십일조)를 거두어 드리는 권한이다. 둘째는 예루살렘 성전에만 하나님이 계시다는 신조(이런 것이 바로 정치든 종교든 권력형 사기이다만)를 내세워 모든 유대인들을 최소한 년 1회 예루살렘으로 모이게 하여 돈을 뜯어내는 일이다. 현실이 그러하였다. 만일 십일조를 못 내든가 최소 일 년에 한 번 예루살렘 성전 참배를 못하는 경우, 그들은 죄인이 된다.
또 하나 성전체제가 당시 유대인들에게 부과한 짐은 이른바 안식일법령과 정결법이다. 안식일법령은 가히 사람을 꽁꽁 얽매는 법령이었던 바 일테면 “안식일에는 이천 걸음 이상 걸어서는 안 된다 ‘, ”병을 고쳐서는 안 된다 “, “두 글자 이상의 글을 써서는 안 된다”, “글자를 고쳐 다시 써서도 안 된다”, “물건을 옮겨서도 안 된다”, “안식일에는 구걸을 해서도 안 된다” 온통 아니 된다였다.
예나 지금이나 있는 분들이야 무슨 고통이 있으리. 다 없는 놈들이 문제지. 신명기법전 곧 여호와를 고백하던 초기 유대인들에게 안식일은 분명 가난한 자들을 쉬게 하려는 정신으로 만들어진 것이건만 체제화된 성전의 공권력은 가난한 자들을 억누르는 방편으로 안식일을 이용하는 세태이었다.
이 위에 정결법은 더욱 가관이었다. 음식 그릇을 씻는 일에서부터 의복, 몸에 대해 어떻게 정결하게 하여야 하느냐를 아주 자세히 규정해 놓은 이 법은 사실 없는 놈들은 거의 지키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이것을 지키지 못하면 다 죄인이 되었다.
로마에 뜯기고 동족의 성전체제에 뜯기고 죄인 중에 큰 죄인이 된 사람들이 기다릴 것이 무엇이었겠나? ’저 세상’ 아니었겠나?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 하나님의 세상 곧 우리들의 세상, 바로 하나님 나라이었다. 물론 그 평온한(?) 식민세상이 천 년 만 년 가주기를 바라던 세력들도 있었겠지. 로마의 권력과 그에 아부하던 유대족들, 성전체제 아래 배 두드리던 권세가들 그 무리들에게야 바로 그때가 천국이었겠지. 구태여 일제치하 한민족과 비교 아니하여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바로 그때 갈릴리 바다 바람맞으며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고 소리친 것이 예수이다. 몰려든 사람들은 이리 뜯기고 저리 뜯기다 ’ 정말 하나님의 나라가 오는 것일까?’하는 설렘으로 다가선 이들이었다. 그들이 바라던 하나님의 나라는 구세주의 왕국 곧 메시아의 나라이었다.
그들이 무엇을 바랐겠는가? 정치적 해방, 경제적 평등, 종교적 자유 등, 그 때나 지금이나 원초적인 사람들의 바람, 비나리 뭐 그런 것들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모여든 사람들과 예수의 생각이 처음부터 달랐다는 곳에 있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생각이 처음부터 달랐다는 말이다. 그의 죽음의 서곡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