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변조
주방의 에스프레소 머신 옆에 앉아 오래된 모카포트를 내려다본다는 것은, 마치 시간의 틈새에 손가락을 넣어 흐름을 잠시 멈추는 일이었다. 모카포트의 쇠물결 같은 몸통에서 뿜어져 나온 향기가 서릿발처럼 일어나 창밖의 도시를 삼켰을 때, 나는 무진(霧津)행 버스에 올라탄 듯했다. 안개는 커피의 크레마처럼 걸쭉했고, 거리 아래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그림자는 잉크에 젖은 타자기 글자처럼 번졌다.
가스레인지 위에서 춤추던 모카포트의 첫 한 모금이 혀끝에 떨어질 때 나는 손으로 쓴 편지를 떠올렸다. 에스프레소 머신이 추출한 산업화된 공식은 항상 같은 맛이었지만, 모카포트의 쓴맛은 날마다 달랐다. 끓는 시간, 물의 양, 불의 세기─인간의 결함이 스며든 맛. 나는 편지의 답장을 향기를 마시는 것으로 대신했다.
모든 추출은 종말을 향해 달린다. 결국 커피를 마시는 동안만 나는 안갯속에 머물 수 있었다. 마지막 방울이 잔 밑바닥에 고여 검은 달처럼 빛날 때, 현실의 소음이 다시 밀려온다. 창밖에는 24시간 편의점의 형광등이 타올랐고, 핸드폰은 24개의 읽지 않은 메시지로 신음했다.
나는 모카포트를 다시 찬장 깊은 곳으로 밀어 넣었다. 손잡이 얼룩이 손가락을 할퀴었지만 아프지 않았다. 내일 아침에 나는─아마도─에스프레소 머신의 30초의 기계적 완벽함을 마시겠지. 커피의 마지막 방울이 남긴 쓴맛이, 혀끝에 폐허가된 순수의 기념비로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