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수업과 상실수업,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그들이 진짜로 두려워하는 건,
혼자 버려지는 것입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수많은 죽음의 자리를 지켜보았다. 그녀가 목격한 것은 생명의 끝이라기보다는, 세상으로부터의 고요한 단절이었다. 의사들은 차트를 들여다보고, 가족은 침묵하거나 미리 이별을 준비했다. 그 속에서 환자들은 살아 있지만, 점점 ‘없는 사람’처럼 대접받았다.
그녀는 그 침묵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말기 환자들과 눈을 맞추고, 귀를 기울였고, 그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꺼내기 시작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죽음을 다룬 사람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삶의 마지막 순간에서야 드러나는 진실을 이야기한 사람이다.
1926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난 로스는 세 쌍둥이 중 한 명이었다. 어릴 적부터 강한 독립심과 생명에 대한 호기심이 컸던 그녀는, 의학을 공부하며 일찍이 인간 존재의 근본에 대한 질문을 품게 된다. 1950년대 말, 미국으로 건너가 의사로 활동하던 그녀는 우연히 병원에서 말기 암환자를 돌보며 인생의 방향을 바꾸게 된다. 병원에서 그녀가 본 죽음은 조용하지 않았다. 소외되고, 두려움 속에 버려진 죽음이었다. 환자들은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자신이 ‘누군가’ 임을 잊혀가는 느낌을 견뎌야 했다. 그녀는 이런 현실에 질문을 던졌다.
"왜 우리는 삶의 끝을 이렇게 외롭게 만들어야 할까? 죽음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탄생한 것이 바로 그녀의 대표 이론인 '죽음의 5단계’였다.
Denial (부정)
Anger (분노)
Bargaining (타협)
Depression (우울)
Acceptance (수용)
학계는 물론이고 대중도 충격을 받았다. 죽음을 과정, 프로세스로 바라본다는 것은 당시로선 매우 급진적인 생각이었다. 로스는 말기 환자와 직접 눈을 맞추고, 대화하고, 그들의 감정 곁에 머물렀다. 그녀의 인터뷰는 냉정한 임상 데이터가 아니라, 존엄성과 정체성에 관한 기록이었다. 1969년, 그녀는 이 내용을 담아 『죽음과 죽어감(On Death and Dying)』을 출간했고, 이는 전 세계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그녀는 죽음을 두려움과 침묵이 아닌, 이해와 대화의 장으로 옮겨놓은 최초의 인물이었다. 이후 그녀는 말기 환자, 자살 시도자, 에이즈 환자, 유아 사망을 겪은 가족들과 함께하며 죽음과 상실에 대한 연구를 더 확장시켜 나갔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의 관심은 단지 죽음이 아닌, 죽음을 통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로 향했다. 이런 고민의 결정체가 바로 『인생 수업』과 『상실 수업』이다. 그녀는 이 책들에서 말한다. 죽음은 우리에게 단 한 가지를 묻는다고.
당신은 얼마나 사랑했는가? 얼마나 진심으로 살았는가, 얼마나 용서했고, 얼마나 당신답게 살았는가.
그녀는 삶을 강연하지 않았다. 대신 죽음 앞에서 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마지막 말을 전했다. 그 말들은 하나같이 비슷했다.
“일 좀 덜 할걸.”
“사랑한다고 더 자주 말할걸.”
“내 마음을 숨기지 말 걸.”
말년의 로스는 뇌졸중으로 반신불수가 되었고, 삶의 마지막까지 자신의 이론을 스스로 살아냈다. 그녀는 자신의 죽음조차도 ‘마지막 배움’이라 여겼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죽음은 결코 삶의 반대편이 아니다. 죽음은 오히려 삶의 가장 진실한 거울이다. 그 거울 앞에 설 용기를 가진 사람만이, 지금 이 순간을, 진짜로 살 수 있다.
우울과 공황이 우리 젊은이들 사이에 무섭게 퍼지고 있다. '대학 갈 때까지', '자리 잡을 때까지', '애가 클 때까지' 어린 시절부터 인내하다 보니 행복을 미루고 사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노력하면 상황이 나아지겠지,라는 기대조차 버린 세대라고들 한다. 무력감과 함께 우울에 빠져버린 많은 이들이 가장 먼저 잃어버리는 것은 자신에 대한 사랑이다. 감히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없지만, 로스의 말을 빌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우리가 결국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삶의 교훈은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타인에 대한 사랑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 스스로를 향한 사랑입니다."
- 책 인생수업 중에서
우울함 속에서 자신을 잃어가는 이들에게, 그녀는 삶의 끝에서 들려온 진실을 전한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살아가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조건이라는 것. 삶의 마지막에서 인간이 깨닫는 것은, 결국 스스로를 사랑하는 용기의 필요성이다.
당신이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이유는,
단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