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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커뮤니케이션

by 손영화

팀들이 꾸려졌고 내가 속한 팀은 인도대학 IT강사 출신 사만, IBM DB 5년 경력 스리, 그냥 인도 아줌마 소냐, 갓 대학을 졸업한 중국계 윌리엄, 그리고 나 5명으로 구성되었다. 팀리더 사만은 프로젝트 전체 그림을 파악한 후 업무를 신속하게 당했다.


커뮤니케이션

그게 프로젝트의 전부였다.

의견은 핵심만, 표현은 간결하게 , 구성은 논리적으로, 말하는 타이밍은 정확하게 , 필요하면 파워포인트로 시각화시켜 이해시켰다. 인도 영어 발음에 익숙지 않아 회의 내내 초집중하고 놓친 부분은 반복을 부탁하거나 양해를 구해 녹화했다. 그들은 성숙했다. 불꽃 튀듯 오고 가던 견해가 부딪히면 차가운 논리와 생명 없는 지식일지언정 배려와 존중에 실려 전달되었고 토론을 통해 완성된 결론으로 거듭났다. 모두들 마음은 이미 현업에 뛰어든 세일즈포스 전문가가 되어 '부족한 우리'는 끈끈한 감정의 연대 속에서 '의미 있는 하나'를 그렇게 이뤄 나갔다. 조직생활에서 피하고 싶은, 하지만 피해 지지 않는 불순물 2% 윌리엄을 제외하고.


그는 프로젝트 기여도 제로임에도 최종 점검을 위한 미팅에 슬며시 등장하더니 구차한 변명을 구질구질하게 늘어놓고는 공들여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올려놓으려 들었다. 게다가, 팀 단위 프로젝트 프레젠테이션에서 리더가 담당하는 오프닝 멘트를 고집했다. 점잖게 설득해도 소용없었다. 막무가내였고 한 치의 물러섬이 없었으며 말 자체가 안 통했다. 논의 끝에 내키지 않았지만 그의 뜻을 들어주기로 결정했었다. 우린 내부 문제를 굳이 외부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역시 인사(人事)가 만사(萬事)였다.


내게 떨어진 과제는 'Validation'.

'이게 뭐지?'

생전 처음 듣는 용어에 막막했다.


맨 땅에 머리를 찧는 심정으로 인터넷의 바다를 헤엄쳤고 눈이 빠져라 유튜브를 시청했으며 웹 코딩학습 플랫폼 W3 School에서 굳어가는 머리로 공부했다. 마감 예정일까지 주어진 과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팀 전체에 끼치는 민폐를 피할 수 없어 심리적 압박은 심했다. 그래서, 쫓기는 심정으로 , 심지어 코딩하는 꿈까지 꿔가며 악착같이 밀어붙인 끝에 마감 직전, 겨우 마칠 수 있었다. 성취감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불가능할 것 같던 과제를 해낸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보상처럼 주어졌다. 오랜만에 엔도르핀이 돌아가는 얼굴에 생기(生氣)가 찾아들었다.

'아, 살아있는 느낌. 힘들어도 이 맛이지. '

한국에서 회사 다니던 기억이 추억이 되어 소록소록 떠오르면서 잃었던 '내 모습'을 찾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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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 당일.

팀 리더들은 직장인처럼 정장 차림으로 진지했다. 그들의 프레젠테이션 속에서 리얼 시나리오가 논리와 이론으로 마술처럼 현실로 구현되고 난제가 기발한 접근방식으로 해결될 때마다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프로젝트 구석구석에 묻어난 고뇌의 흔적들에 코 끝이 찡하고 가슴이 뭉클했다. 그 곳은 단지 기회가 없어서 억눌리던 잠재능력들이 한풀이하듯 터져 나온 장이었다. 한 편의 드라마였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IT 실무 경험이 없다면 프로젝트가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다는 강사의 주장은 구직과정에서 택도 없는 거짓말로 드러났다.


또, 한방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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