易地思之
내가 건넨 한 장의 편지는 뒤통수로 날아든 돌이 되어 완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고 등등(騰騰)하던 그녀의 기세는 꺾였지만 승리의 쾌감보다 혹시 힘없는 봉급쟁이에 지나지 않는 그녀의 말 못 할 사정을 헤아리지 못한 채 경솔하게 앞서 간 건 아닐까. 염려가 되어 오히려 마음은 무거웠다. 그래서, 그녀의 소리를 독백으로 구성해 보았다.
난 가난한 집에서 컸다. 배운 것도 없어. 그래서, 살아보려고 죽어라 일했지. 덕분에, 주문 포장하며 곱던 손은 거칠어지고 무거운 박스 더미를 팔렛 잭으로 끌던 팔뚝은 굵어졌으며 피부는 두꺼비 껍질처럼 변했다. 보잘것없는 내게 회사는 고맙게도 기회를 주었고 그 보답을 좋은 성과로 돌려주고 싶었어. 그게 그렇게 잘 못 된 건가. 난 저들을 무시하지 않았어. 파견 일용직에서 시작해 그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내가. 그저 잘 해보고 싶었을 뿐인데 씁쓸하다. 억울하다.
그리고, 요즘 인원 감축한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아서 하루하루가 살얼음판 걷는 것처럼 불안한데 어금니 깨물고 악착같이 일해야 살아남지. 이 잡은 내게 단순한 돈벌이가 아니라 밥줄, 아니 목숨줄이야. 놓치면 딸아이 손 잡고 길바닥에 나 앉는 거라고.
'아, 서럽다. '
순간, 홀로 키우는 딸아이 얼굴이 떠오른다.
일이 힘들거나 속상한 일이 생기면 화장실 방해받지 않는 공간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곤 저장된 사진 속 딸아이 환한 얼굴을 몰래 보며 힘을 얻곤 했지. 울컥한다. 자꾸 눈물이 나려 하네. 참자. 울지 말자. 강해져야 한다.
'괜찮아요, 나의 천사. 난 엄마니까'
사연 없는 인생이 있을까.
쉬운 인생이 있을까.
누구든 각자의 방식으로 짊어진 삶의 무게를 감당하듯
그녀 역시 그녀의 방식으로 견뎌내고, 살아내고 있을 것이다.
감정에 순간적으로 휘둘려 사람 하나 보낼 뻔했다.
난 아직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