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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라보던 방이 나를 볼 때

나는 이 공간의 주인일까, 대상일까

by 그냥 하윤

방 안은 조용했다. 그 조용함 위로 스탠드 불빛이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었다. 불빛은 책상 끝 모서리를 스치고 있었고, 그 빛줄기의 각도는 마치 내 쪽을 응시하는 듯한 방향으로 멈춰 있었다. 모서리를 스친 빛 끝에서 시선을 옮겨보았다. 스탠드 아래 놓인 책은 반쯤 열려 있었고, 시계는 초침이 멈춘 것처럼 미세하게 나를 향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아주 낯선 기분에 사로잡혔다. 마치 방 안의 모든 것들이 정지된 상태로 나를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듯했다. 시계도, 불빛도, 책도, 내 몸에서 단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


나는 분명 이 방의 주인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사물들이 나를 둘러싼 연극의 중심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조용한 빛, 방향을 가진 사물들. 누가 누구를 바라보고 있었을까.


익숙한 물건들이 내 쪽을 향하고 있을 뿐인데, 어쩐지 자세를 고쳐 앉게 된다. 누군가 쳐다보는 느낌은 아닌데, 무언가가 나를 ‘알고 있다’는 기분. 설명되지 않는 시선의 감각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방은 철저하게 내가 만든 세계다. 책상의 방향도, 거울의 각도도, 창문으로 드는 빛의 흐름도. 모두 내가 정한 구도지만, 문득 이 구조 안에서 내가 관찰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내 시선을 위해 정리한 사물들이, 되레 나를 바라보는 시야를 만들어버린다는 모순.


가령 침대 옆에 앉아 있으면 늘 눈에 들어오는 인형, 문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놓인 의자, 누구도 마주보지 않는데 항상 열려 있는 노트북 화면, 그리고 그 화면 속 정지된 나의 모습. 나는 이 방에서 '보는 사람'이 아니라, 수많은 사물의 틈에 잠시 놓여 있는 대상일지도 모른다.


그 생각이 들고 나니 방 안의 모든 것이 잠시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책상 위의 펜은 내가 글을 쓰기 전부터 그 자세로 기다리고 있었고, 벽에 걸린 가방도 오랫동안 누군가를 지켜본 눈처럼 보였다.


영화 <중경삼림> 속 양조위는 방 안의 사물에 말을 건다. 대답은 없지만, 방 전체가 조용히 그를 바라보는 것처럼 보인다.


존재가 아닌 배열이 나를 겨누고 있다는 감각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방 안에서, 어떤 침묵이 나를 따라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내가 방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방이 나를 오래전부터 지켜보고 있었던 것만 같다.


시선은 꼭 눈으로만 오는 것이 아니다. 빛의 기울기, 물건의 방향, 침묵의 결, 그 모든 것들은 방향을 갖고 있었다. 가끔은 그 무언가가 나를 향하고 있을 때, 나는 설명할 수 없는 감각으로 그것을 느낀다.


우리는 매일 같은 공간에 살고, 같은 물건을 지나친다. 하지만 어느 날은 그 익숙한 배치가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평소처럼 스탠드를 켰는데 빛이 지나치게 각이 져 있고, 책이 펼쳐진 방향이 어딘가 낯설게 느껴지고, 방 안 공기가 갑자기 시선처럼 무거워질 때. 그 사소한 틈이 내 감각을 잠시 멈추게 한다.


빛은 설명하지 않고 감정을 건넨다.


나는 여전히 방을 바라보지만, 어떤 날은 시선을 돌리는 게 이상하게 조심스럽다.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오래 남는다. 그럴 때 문득 깨닫는다. 나는 공간을 만들며 살아가지만, 동시에 그 공간 속에서 나도 함께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바라본다는 건 일방적인 행위가 아니라, 결국은 나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자각이다.


그리고 그걸 아는 순간, 방 안의 정적이 조금 다르게 들린다. 시선이란 내가 가진 것이 아니라, 잠시 머물렀다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이 방에서 똑같이 살고 있지만, 아주 가끔 그 사물들의 방향을 의식하게 된다. 이따금 나도 모르게 자세를 고쳐 앉고, 노트북을 덮고, 불을 끄고, 한동안 조용히 눈을 감는다. 그건 두려움 같은 감정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이 공간 속에 하나의 결로 섞여 들어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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