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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잡을 수 없는 순간의 반짝임에 대하여

젖은 돌멩이처럼, 스쳐가는 감정들

by 그냥 하윤

그날의 바다는 유독 너그러웠다.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모래 사이로 스며드는 물결은 마치 누군가의 속삭임 같았고, 그 속삭임에 이끌려 나는 한참 해변을 거닐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발끝에 닿은 무언가가 있었다. 모래에 반쯤 묻힌 작은 돌멩이 하나. 자세히 들여다보니 희미한 하트 모양을 닮은 그 돌은 파도에 젖은 채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마치 방금 바다에서 건져 올린 기억처럼.


수많은 돌들 중에서도 유독 그 돌멩이만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던 것은 단순히 모양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바닷물이 만들어낸 윤기, 그리고 그 윤기 속에서 깜박이던 작은 빛의 입자들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손바닥 위에 올려보니 차가운 감촉이 먼저 닿았고, 이내 투명한 윤기가 번졌다. 그것은 충분히 특별해 보였다.


'이걸 그냥 두고 갈 수는 없지.'

그렇게 나는 한 조각의 반짝임을 품에 안고 돌아왔다.




내가 들고 온 건 설렘이었을까, 환상이었을까. 집에 돌아와 주머니를 뒤지자 손끝에 마른 모래가 함께 쓸려 나왔다. 그리고 꺼낸 돌멩이는 이미 마르고 빛이 바랜 채 평범하기 짝이 없었다. 바닷가에서는 그렇게 아름답고 특별했던 빛깔이 집안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선명했던 하트 모양도 흐릿해졌고, 어디에 놓아야 할지 몰라 우선 엄마가 키우던 화분 위에 올려두었다.


그 순간에도 나는 알고 있었다. 이 돌이 별것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바닷가에서 느꼈던 그 설렘을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었다. 마치 사랑에 빠진 사람이 상대방의 단점을 보면서도 차마 사랑을 멈출 수 없는 것처럼.


그렇게 존재를 잊고 지내던 어느 날, 문득 떠올라 화분 쪽을 바라보았을 때 돌은 사라지고 없었다. 엄마가 정리하며 아무 쓸모없는 돌인 줄 알고 치웠겠지. 순간의 허무함이 밀려왔다. 아니, 허무함이라고 표현하기도 민망했다. 그건 사실 처음부터 별것 아니었으니까.


그 순간의 나를 이 사진이 대신 붙잡아준다.

돌멩이를 처음 만났던 해변의 장면이 떠오른다. 어쩌면 나는 바닷가의 촉촉한 빛깔을 억지로 손바닥 안에 쥐고 집으로 가져오려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할수록 손 안의 모든 것들은 더 빨리 빛을 잃고 말았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그런 일은 무수히 반복되고 있다. 어떤 사람과의 첫 만남, 새로운 장소에 도착했을 때의 설렘, 문득 떠오른 꿈 하나. 그 순간엔 반짝이지만, 일상에 들어오면 생각보다 평범해지는 감정들. 처음 만난 사람에게서 느낀 강한 인상도 현실로 끌어오면 어색한 대화 몇 마디로 끝날 때가 많고, 가슴을 뛰게 한 목표도 계획을 짜는 순간 김이 빠지곤 한다.


그게 인간의 한계일까, 아니면 인간다움의 본질일까. 우리는 순간을 영원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찰나의 아름다움을 소유하고 싶어 하고, 스쳐 가는 감정도 오랫동안 붙잡아 두고 싶어 한다. 하지만 바닷물이 마르면 돌멩이가 평범해지듯,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의 감정들도 그 본래의 빛을 잃는다.


이제 조금은 안다. 모든 반짝임을 붙잡을 수 없다는 것을. 그저 어떤 순간은 바닷가의 젖은 돌멩이처럼 그 자리에 그대로 두고 오는 편이 더 낫다는 것을 말이다. 어쩌면 우리가 의미를 부여했던 수많은 감정들은 사실 그저 물결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이고, 우리는 그런 순간의 물기를 굳이 붙잡아 두려고 너무 애쓰며 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러니까 이젠 그냥 두고 오자. 그 자리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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