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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에 귀 기울이면

자연과 마음 사이, 소음을 듣는 일

by 그냥 하윤

숲은 고요하다고들 말한다. 그늘진 나무 아래 잠시 앉아 눈을 감으면, 마치 세상의 소음이 멈춘 듯 느껴진다. 하지만 그 고요는 정말 존재하는 걸까?


처음 몇 분간은 고요의 환상에 젖는다. 도시의 소음에 지친 귀가 마침내 쉼을 얻는 듯하고, 마음마저 차분해지는 착각에 빠진다. 그러나 조금 더 오래 머물다 보면, 이내 깨닫게 된다. 고요함이란 얼마나 기만적인 감각인지.


먼저 작은 새들이 지저귀기 시작한다. 곧이어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힌다. 어디선가 벌레들이 가냘프게 울고, 나뭇가지들은 서로 몸을 기대며 부딪히고, 바닥의 잎사귀들은 바스락거린다. 멀리선 물소리가 흐르고, 아주 미세한 움직임들까지도 귀에 닿는다. 가만히 귀를 기울일수록, 고요는 점점 사라지고 공간을 채운 소리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이 소리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새삼스러운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모든 소리는, 살아 있는 존재들이 남기는 흔적이라는 점이다. 새들의 노랫소리는 영역을 지키고 사랑을 부르는 신호이며, 벌레들의 울음은 생존의 외침이다.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릴 때 나는 마찰음조차 나무가 숨 쉬고 살아 있다는 증거다. 우리가 ‘소음’이라 부르던 것들은 사실, 자연이 살아 숨 쉬는 방식이다.


이런 인식은 우리가 익숙하게 여기는 ‘침묵’의 개념마저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진정한 침묵이란 모든 소리가 완벽히 사라진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각기 다른 소리들이 제각각의 리듬을 유지하면서도 전체적으로 하나의 조화를 이루고 있을 때, 비로소 찾아오는 평온한 상태다.


때때로 우리의 마음 역시 이 숲과 같다. 겉으로는 평온한 표정으로 침착하게 말을 건네지만, 그 순간 머릿속은 수많은 소음으로 요동친다. 어제의 후회는 낮게 웅웅거리고, 내일의 불안은 날카롭게 지저귄다. 누군가를 향한 서운함은 메마른 잎사귀처럼 바스락대고,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은 바람처럼 스쳐 지나간다.


나 또한 사람들 앞에서 덤덤히 "괜찮다"고 말할 때, 사실은 수많은 소리를 견디고 있다.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순간조차 내 안의 감정들은 저마다의 소리를 높이며 쉴 새 없이 맴돈다. 이 모든 소리는 타인에겐 들리지 않지만, 나에겐 하루 종일 울려 퍼지는 내부의 교향곡이다.


한때는 이 내적 소음들을 억지로 침묵시키려 했다. 불안을 억누르고, 분노를 짓누르며, 슬픔을 회피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소음들은 더욱 거세게 저항했다. 그러다 어느 날, 숲에서 하나의 통찰을 얻었다. 자연은 소음을 없애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소리를 그대로 품으면서도 절묘한 균형을 이루며 평온을 유지한다.


그때부터 마음속 소음들과 마주 앉아 대화를 시도했다. 불안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물었고, 분노의 이유를 들었으며, 슬픔의 근원을 조용히 들여다보았다. 소음에 귀 기울이고 받아들이자, 각자의 소리들은 어지럽게 충돌하지 않고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소음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이제는 나를 뒤흔드는 위협이 아니라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자리 잡았다.


오늘도 나는 숲을 찾는다. 침묵을 기대해서가 아니라, 소음을 만나기 위해서. 숲을 향한 여정은 매번 새로운 발견이며, 아직 다 이해하지 못한 내면과의 대화다. 나는 여전히 미완의 상태이고, 숲 또한 매번 다른 모습으로 나를 맞이한다.


어쩌면 평생 완성되지 않을 이 여정을, 나는 기꺼이 계속할 생각이다. 숲에서의 재발견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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