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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감독관의 하루 휴가

반려견과 나, 누가 누구를 돌봤을까

by 그냥 하윤

달이가 없는 오후다. 아침에 병원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 햇살은 평소보다 조금 더 밝아 보였다. 하지만 그 빛을 받아들이는 집 안은 이상하게 흐려져 있었다. 익숙한 발톱 소리도, 부엌 앞에 엎드려 있던 하얀 몸도 없었다. 무심코 "달아-" 하고 부르곤, 멈칫했다. 이제 막 병원에 보낸 아이를 부른다는 게 우스워서 웃었지만, 웃음 뒤엔 이상할 만큼의 정적이 남았다.


모든 게 그대로인데, 하루가 달라졌다. 컴퓨터를 켜고, 커피를 내리고, 메일함을 열었지만 어딘가가 텅 비어 있다는 감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메신저는 잠잠했고, 지긋지긋하던 수정 요청조차 없었다. 작업물을 데드라인보다 일찍 보내버린 걸 괜히 후회했다. 차라리 일에 몰두하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나를 피해간 날이었다.


대단한 일이 벌어진 것도 아니고, 이별을 한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도 하루가 제자리를 찾지 못한 느낌이다. 녀석이 집 안의 풍경을 바꾸진 않았지만, 내 하루의 ‘리듬’을 만들어주는 존재였다는 걸 새삼, 선명하게 깨닫는다.


프리랜서가 된 이후, 집은 곧 사무실이 되었다. 처음에는 따로 사무실을 계약해볼까도 생각했지만, 노견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기 위해 결국 집에서 일과 생활의 구분 없이 지내는 방식을 택했다. 일을 하다 보면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가고, 때론 아침을 먹고 바로 저녁을 맞기도 했다. 어떤 날은, '시간이 이렇게 빨리 간다고?' 하면서도 햇빛 한 번 쐬지 못했다는 걸 뒤늦게 깨닫곤 했다.


그런 나를 억지로라도 창밖으로 끌어낸 건, 나보다 시간을 더 오래 살아낸 녀석이었다. 산책 시간도 늘 달이가 먼저 알려줬다. 하루 중 햇빛이 가장 부드럽게 들어오는 시간을, 나는 하얀 털의 친구의 눈빛과 기지개로 알아차렸다. 그렇게 보면, 내 하루의 동선 중 많은 부분이 그 작은 생명체의 리듬에 따라 짜여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간식 시간, 산책 시간, 낮잠 시간. 모두 이 아이에게는 단순한 루틴이었겠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일종의 '생활'이자 하루를 나눠주는 '시간의 구조'였다. 나는 바쁘다고 여겼지만, 실은 달이가 내 하루의 문을 하나하나 열어주고 있었던 셈이다.


햇살이 닿는 방향으로 늘 걷는다

혼자 일하며 놓치기 쉬운 것들이 있다. 자세, 눈의 피로, 햇빛, 대화. 모든 것을 그 작은 존재가 무심한 듯 챙겨주고 있었다. 마치 인간관계처럼, 내가 돌본다고 생각했던 존재가 실은 나를 돌보고 있었던 관계였다.


나는 돌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밥을 챙기고, 약을 주고, 계절이 바뀌면 미리 옷을 꺼내놓고. 그러나 오늘만큼은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그 돌봄 자체가 나의 리듬이었고, 그 루틴 덕분에 하루를 사람답게 살아오고 있었다.


내가 챙겨준 만큼, 그 작은 존재는 나의 시간을 챙기고, 몸을 움직이게 하고, 햇빛을 보게 했다. 자꾸 자세가 구부정해질 때쯤 현관 앞에 서서 나를 바라보던 눈빛, 일에 몰두하느라 늦은 점심을 건너뛰려 하면 빈 그릇을 핥으며 보내던 신호.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조용한 방식은 분명 나를 챙기고 있었다. 하얀 털의 친구는 그렇게 내 하루를 관리하고 있었다.


햇살이 닿는 자리를 가장 먼저 차지하곤 한다.

오늘은 그 조용한 감독관이 없다. 바쁘다고, 피곤하다고, 혼자 일한다고 말하던 날들에도 사실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식탁 아래 조용히 앉아 있던 온기, 마감에 몰두하느라 잊었던 점심시간을 일깨워주던 시선 ㅡ 옆에 있다는 걸 자각하지 못한 채 누려온 것들은, 없을 때 비로소 감지된다.


오늘은 조금 낯설다. 저녁이면 다시 돌아올 녀석이라는 걸 알지만, 이상하게도 시간이 평소보다 더디게 흐른다. 커피를 마셔도, 창밖을 바라봐도, 무언가 하나 빠진 듯한 감각. 익숙했던 리듬이 사라지니, 평범한 시간도 어딘가 덜 채워진 느낌이다.


아마도 이런 하루가, 이 작은 존재가 내게 만들어준 시간의 모양을 더 또렷이 드러내는 건지도 모르겠다. 곧 다시 돌아올 리듬을 기다리며, 나는 그 틈 사이를 조심스럽게 건너본다.


13년 지기 단짝, 작은 숨소리로 나의 하루를 채워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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