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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위에 부서진 시간의 형상

기억은 흐르고, 빛은 머문다

by 그냥 하윤 Mar 01. 2025

나는 매일 같은 한강을 본다. 때때로 낮에는 물 위로 부서지듯 반짝이는 물빛을 볼 수 있다. 눈이 부셔서 오래 바라보지는 못하지만, 한강에 와서 윤슬을 마주할 때면 조금은 특별한 기분이 든다. 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그리는 무늬. 그 조각난 빛들이 마치 오래된 기억처럼 부유한다.


햇살이 강물과 만나면 마치 바닷가의 파도가 부서지듯 빛이 조각난다. 바다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눈부신 윤슬을 보고 있으면 파도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강과 바다는 다르지만, 흐름과 반짝임이라는 본질적인 속성은 같다.


한강은 도심 한가운데를 흐른다. 건물과 다리, 그리고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서도 물결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그 위로 빛이 춤춘다. 윤슬은 그 일상의 한가운데에서 불현듯 시선을 사로잡는다. 바쁜 흐름 속에서도 잠시 멈춰 서게 만들고, 생각을 가볍게 비워낸다.


하지만 그것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햇살의 각도에 따라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방금까지 눈앞에서 반짝이던 빛이 어느새 흩어지고 나면, 마치 어떤 기억이 점차 희미해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빛은 여전히 물살 속을 흐르고, 언젠가 다시 떠오를 것이다. 기억처럼, 혹은 시간처럼.




나는 매일 같은 한강을 본다. 그러나 그 강이 매일 같을 리 없다. 흐르는 물이 다르듯, 빛이 부서지는 방식도 날마다 달라진다. 그럼에도 한강이 때때로 바다처럼 느껴지고, 윤슬이 파도처럼 보이는 건 우리가 그 반짝임을 기억하기 때문일 것이다. 순간에 불과한 것 같지만, 우리는 찰나 속에서도 의미를 찾는다.


누군가는 저 반짝임을 꿈이라 부를 것이고, 누군가는 스쳐 가는 인연이라 부를 것이다. 나에게 윤슬은 시간이다. 지나온 순간들이 저렇게 부서져 반짝인다. 그러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흐를 뿐이다. 언젠가 다시, 다른 형태로 다가올 파도처럼.


강은 내게 말을 하지 않는다. 다만 그 위를 가로지르는 햇살을 품어 반짝이며 답한다. 어떤 날에는 조용한 미소처럼, 어떤 날에는 가슴 시린 여운처럼. 그래도 강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모든 기억을 안고 흐르며, 해가 뜨면 다시 반짝이는 조각들을 띄운다.


우리의 기억도 강 위를 스치는 빛처럼 흐른다. 사라지는 게 아니라, 언젠가 다른 모습으로 반짝일 뿐이다.


- 2021년의 어느 봄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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